[뉴욕타임스/arts]대중문화 오염자정능력 있다

  • 입력 2000년 11월 9일 19시 25분


할리우드의 영화사 중역들은 상원의 한 위원회에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같은 R등급 공포영화들이 9세 어린이들에게 시험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바로 이 시기에 런던에서는 영국의 인기 있는 미술가인 트레이시 에민의 새로운 작품이 발표되었다.

에민은 특히 자기 고백적인 설치 작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예술가로서, 이 설치 작품에는 오물이 묻은 속옷, 담배 꽁초, 빈 보드카 병, 이미 사용된 콘돔 등이 등장했다. 또한 런던의 사치 화랑에서 발표된 그녀의 새로운 작품 ‘나는 그것을 모두 가지고 있다’에는 다리를 벌린 채 지폐 다발을 출산하고 있는 그녀의 사진이 포함돼 있다.

에민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중에서도 특히 10대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대는 예술 세계에서 새로 등장한 집단으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같은 영화들이 탐을 내는 관객이기도 하다.

앨 고어 부통령은 최근의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문화적 오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정말로 우리 문명이 아래를 향해 추락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대중문화가 점점 청소년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고, 진지한 예술가들이 대중문화를 흉내내는 경우가 잦은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조악해졌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번영을 즐기며 살고 있으면서도 예전보다 더욱 냉소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아르마니의 재정후원을 받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기타 여러 유명 화랑 및 미술관들에서 사람들은 할리우드를 흉내낸 예술작품들을 보며 돌과 같은 무관심을 가장한다. 멍청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가들 역시 작품을 보고 느낀 실망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평가들이 예술과 너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시각이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까봐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1967년에 뉴욕타임스의 영화 비평가였던 보슬리 크라우서는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에 대해 “불안정하고 무모한 취미를 만족시키는 영화이며, 지나친 폭력을 묘사한 또 하나의 곤혹스러운 작품”이라고 썼다가 그 해가 가기 전에 은퇴를 해야만 했다.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의 와중에서 젊은이의 문화에 초점을 맞추었고 앞으로 있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문명의 타락에 대한 비판은 다른 문제들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920년대에는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영화관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하자 이 기술적 변화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미국 문화의 붕괴와 어린이들의 타락 위험성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른 문제에 대한 불안을 감추기 위해 문화를 비판하는 자기 기만적인 행위는 세대마다 반복되었다. 특히 선거 기간 중에 이런 문화 비판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에는 만화책이, 60년대에는 텔레비전이 그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사회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계속 문화적인 추락을 거듭해왔는가? 1950년대 이전에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걸으면서 침을 뱉어대곤 했기 때문에 거리 곳곳에 타구(唾具)가 마련돼 있었다. 얼마 전까지 거리에 재떨이가 있었던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문화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스스로를 교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에 사람들이 가졌던, 영화가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공포를 자세하게 기록한 고전적인 책 ‘영화가 만들어낸 미국’을 쓴 로버트 스클라는 얼마 전 자신의 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피투성이 장면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편집자였는데, 아이 엄마가 된 후에는 폭력적인 것에는 근처에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

(http://www.nytimes.com/2000/11/05/arts/05KIM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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