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피플]동아건설 협력업체 B사장의 하루

  • 입력 2000년 11월 9일 19시 25분


《최근 11개 대형 건설업체가 퇴출되면서 협력업체들이 연쇄 도산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1260개의 협력업체가 이들 회사로부터 하도급 대금으로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돼버린 것. 동아건설의 협력업체인 A사의 B사장(41)도 요즘 다른 협력업체 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여지저기 뛰어다니며 연쇄 부도의 ‘악령’과 싸우고 있다》

8일 오전 6시. 그는 잠자리에서 눈을 떴지만 몸이 돌덩이처럼 무겁다. 동아건설의 부도로 휴지조각이 된 공사대금 어음 8억원의 처리 때문에 며칠째 잠을 설쳤다. 지난해 1년 매출액(18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여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84년 대학 졸업 이후 건설회사를 전전하다 겨우 기반을 잡은 회사가 93년 덜컥 부도를 냈다. 막막했던 그는 처가가 있는 대구로 내려가 1년간 백수생활을 했다. 94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자리잡은 직장 역시 97년 말 외환위기 직후 쓰러졌다.

더 이상 좌절할 수 없다는 각오로 98년 4월 빚을 얻어 회사를 만들었다. 어려운 때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덕분에 업계에서 신임을 얻었다. 첫해 매출 10억원, 지난해 매출 18억원을 올리면서 회사도 안정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올해는 26억원까지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모든 게 무너졌다.

집을 나서며 초등학교 6학년인 맏딸에게 “아빠 사업이 어려우니 절약하고 동생을 잘 돌보아라”라고 말한다. 아무 죄도 없이 채권자들에게 시달릴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냥 부도를 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신용이 아깝고 자신의 부도로 고통받게 될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다.

오전 7시30분. 양재동 사무실에 도착해 전화를 통해 공사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어제처럼 모든 게 중단됐다는 보고만 들린다.

오전 10시. 서울 중구 서소문동 동아건설 본사를 찾았다. 다른 협력업체들과 대책을 논의해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린다. 돈을 독촉하는 사채업자, 자재업체….

벌써 점심 시간. 그러나 건너뛰어야 할 것 같다. 벌써 1주일 째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밥 먹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 2시. 또 다른 원청업체인 S사를 찾아갔다. “동아건설 부도로 회사 경영이 어려울 텐 데 우리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하루아침에 변하다니, 배신감이 몰려온다.

오후 4시. 사무실에서 사채업자를 만났다. 동아건설의 부도어음을 대신 갚지 않으면 공사대금 등을 압류하겠다고 한다.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늦은 밤. 귀가 길에 정부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은행에는 공적 자금을 수십조원씩 쏟아부으면서 몇 천억원이면 해결될 건설업체 문제를 외면하다니….’

집 앞에 다다른다. 초인종을 누르기가 겁난다. 처자식과 월급이 밀린 직원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오늘밤도 소주 없이는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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