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일본, 정말 다시 보자

  • 입력 2000년 11월 8일 18시 58분


미국의 새 대통령당선자에 세계의 눈이 쏠린다. 우리는 더욱 그렇다. 앞으로 한미(韓美) 북―미(北―美)관계는 어떻게 될지,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 대선 결과를 분석 진단하고 내일을 전망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미국을 주시하는 것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일본을 제대로 봐야겠다. 겉으로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다, 문화개방이다 해서 한일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다고들 한다. 실제 그런가. 아닌 것 같다. 구석기시대 유물을 날조한 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한 개인이 서투른 솜씨로 구석기 유물을 심어놓는 정도가 아니라 일본이, 사실상 일본정부가 우익세력 및 자민당의원들과 함께 조직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日정부가 왜곡 주도

현재 일본 출판사들이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해놓은 2002년도판 중학 역사교과서로 공부를 하게 되는 학생들은 일본의 한반도 강점을 ‘당시의 국제관계상 합법적인 것’이라고 배울 것이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도 침략이 아닌 ‘진출’로 이해할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 난징(南京)대학살, 간토(關東)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조선의 항일운동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할 것이다.

이처럼 2002년도판 교과서는 지금의 것보다 훨씬 후퇴했다. 결국 82년 역사교과서 파동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바로 2년 전 한일 두 나라 정상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동 결의를 선언했는데 말이다.

며칠 전에는 사실을 왜곡한 교과서를 불합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양심 있는 심사위원이 문부성에 의해 전격 경질됐다. 이를 보면, 일본의 시민단체들도 지적하듯이 일본정부가 역사 왜곡을 사실상 주도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일본의 자세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82년 교과서 파동 때 한국 중국 등의 반발이 거세어지자 일본 문부성은 검정기준에 이른바 ‘근린제국(近隣諸國)조항’이라는 것을 신설했다. ‘아시아와 관련된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국제이해와 국제협조의 견지를 배려해서 기술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항이 생김에 따라 ‘진출’이 ‘침략’으로 바로잡아지고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들어가게 됐다.

‘왜 이리 약합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 조항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는 곧 이웃나라를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검정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중국 외교부는 이를 강도 높게 비난했고 북한도 즉각 시정을 촉구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반응은 늦고 미온적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이정빈(李廷彬)외교부장관이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우려’를 전달했다지만 이런 정도로 문제 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저지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왜 우리 정부는 이렇게 미지근한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98년 방일 때 과거사를 일단락짓고 “다시는 과거 문제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 사실상 ‘면죄부’를 줬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민주당 이낙연(李洛淵)의원이 지난주 금요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핵심을 짚었다. 이의원의 질의 내용 일부를 옮겨보자. “…왜 이리 약합니까. 만약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다면, 과거사 문제를 일단락지은 대통령의 결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과거사 매듭에서 출발한 ‘국민의 정부’의 대일(對日)외교는 그 출발의 잘잘못부터 심판을 받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광복 이후 가장 좋다고 자랑해 마지 않던 한일관계는 또 어떻게 되며, 2002년 한일월드컵은 또 어떻게 됩니까.”

남북관계가 잘 되려면 주변 4강국과 잘 지내야 한다. 꼭 2002년 월드컵이 아니라도 이웃 일본과는 더욱 그렇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자존심을 지켜나가야 한다. 자존심은 결코 배타(排他)가 아니다. 서로 깔보거나 깔보임을 당해서도 안된다. 그러려면 서로 할 말은 제때 제때 당당하게 해야 한다.

<어경택 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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