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奎章閣(규장각)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04분


奎―별자리 규 遜―겸손할 손 右―높일 우 御―임금 어 苑―정원 원 藏―보관할 장

지난 回에는 正祖에 대해 이야기했다. 확실히 그는 보기 드문 好學君主였고 그의 右文精神은 재위기간 중 무려 150종이 넘는 典籍(전적)의 출판을 보게 하였으며 학문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은 當代의 내로라 하는 학자들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책을 워낙 좋아해 世孫 때부터 수집하였으며 즉위 후에는 중요 典籍의 내용을 기록한 訪書錄 2권을 지어 大臣들에게 참고토록 했는가 하면, 燕行使(연행사)의 入燕시에는 親히 書目을 정하여 구입을 명하기도 했다. 또 日理萬機(일리만기)의 와중에도 시문의 창작에 힘써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뿐인가. 수시로 學士를 불러 질문하고 토론하였는데 그의 下問에 답을 못해 쩔쩔매는 學士도 많았으며 오류를 시정하거나 능가하는 견해를 밝힌 적도 많다. 한마디로 그는 當代 최고의 학자이기도 하였던 셈이다. 그의 학문을 담은 弘齋全書(홍재전서) 100권은 세계의 어떤 제왕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방대한 著述이다.

그의 학술진흥책 중 가장 중요한 것이 奎章閣의 설치다. ‘列聖(열성·역대 임금)들의 御製(어제·임금이 지은 글이나 그림)를 한 곳에 모아 奉安토록 하라!’

그러니까 奎章閣은 先王 英祖를 비롯한 역대 제왕들의 각종 雲章(운장), 寶墨(보묵)을 보존하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왕립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이름도 御製閣(어제각)이라고 했던 것이 후에 奎章閣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실 奎章閣의 ‘奎’는 서방에 있는 별자리의 이름으로 一國의 文運을 주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늘에 높이 떠서 빛을 발하므로 御製도 세상을 밝히는 것이라 하여 특별히 帝王의 文墨(문묵)을 ‘奎’라고 불렀으며 이 때문에 ‘奎章’이라면 帝王의 文章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300여년 앞서 세조 때 梁誠之(양성지)가 奎章閣의 설치를 上奏(상주)한 것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肅宗(숙종) 때 잠시 사용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御製 藏書閣(장서각)으로서의 기능은 아니었다.

그 뒤 奎章閣은 초기의 기능을 넘어 많은 典籍을 소장하게 되어 현재 장서 17만5000여 책, 고문서 5만여점, 책판 및 기타 1만8000여장에 달하는 방대한 국학자료를 소장하게 되었다.

正祖가 그 뒤 1781년 강화도에 또 다른 藏書閣을 지어 역대 왕실의 儀軌(의궤)만을 전문적으로 奉安토록 했는데 그것이 요즘 거론되고 있는 外奎章閣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