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상업지구 소나기 신축 '러브호텔' 불렀다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0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시작된 러브호텔 반대운동이 서울 대구 대전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YMCA와 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들은 이들 지역의 러브호텔반대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조직적인 반대운동 및 대안 마련에 나섰다.

한적한 산자락 인근에나 자리잡았던 러브호텔이 아파트와 학교 인근까지 몰려든 이유는 무엇이고 러브호텔 문제에 시민단체들이 나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된 까닭은 무엇일까.

▽규제완화〓자치단체들은 99년2월 건축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도시 미관이나 주변환경에 부적합한 건축물에 대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있었으나 이 조항이 삭제돼 단체장의 재량권이 없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건축법 개정으로 사전 방지가 어려워졌다면 공중위생법 규제 완화로 사후 규제도 사실상 없어졌다. 99년 2월 개정된 공중위생법에 따라 숙박업소는 영업신고 대상에서 동네 슈퍼마켓과 마찬가지로 자유업으로 변경돼 개설을 통보만 하면 되므로 행정당국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준농림지와 자연녹지 규제강화〓고양시는 99년12월 조례를 개정해 준농림지 내 숙박업소 건축을 금지했다. 또 도시계획법이 올 1월 개정되면서 자연녹지지역에서의 숙박업소 건축도 금지됐다. 땅값이 싸 업주들이 선호했던 준농림지와 자연녹지에서의 숙박업소 건축이 불가능해지자 비용부담이 높지만 건축이 가능한 상업지구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일산신도시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아무런 완충지역 없이 맞닿아 있어 아파트 숲속 러브호텔 건립이 가능했다.

▽손쉬운 대출〓일산신도시내 13개 러브호텔은 은행과 생명보험사 등 금융권으로부터 247억여원을 대출 받은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업소 당 평균 19억원에 이르는 셈. C모텔은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무려 48억원을, V모텔은 37억원, P모텔은 27억원 등 건축비용에 충당하고도 남을 금액을 대출 받았다. 일산신도시 러브호텔에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생명보험사를 포함해 6개. 심규현 고양시의원은 “주민반발이 거센 시점에서도 수십억원을 대출해주고 상환기간 연장 조치까지 해주려는 금융기관의 도덕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주민반대운동〓지난해 연말부터 일산신도시 아파트단지 바로 앞으로 러브호텔이 몰려오자 주민의식이 빠르게 변했다. 출퇴근 때마다 ‘러브현장’을 봐야 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도 이를 목격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다. 당장 집값이 떨어졌고 전세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도, 정부도 ‘법규정’만 말할 뿐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시민단체가 앞장서고 주민들이 호응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섰다. 특히 수 십 차례에 걸친 시위와 서명운동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주민들은 ‘내 힘 외에는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인식했다. 행정당국의 무대책이 시민의 결속력과 반대운동 의지를 높여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준 셈이다.

▽시민단체의 분석〓시민단체들은 법적 완화와 함께 단체장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애써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고양시 러브호텔 공대위’ 오동욱 사무국장은 “단체장의 권한이 줄어들었지만 도시설계를 변경할 권한이 남아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고양 여성민우회 김인숙 회장은 “마구 들어서는 유흥업소들도 러브호텔 난립의 좋은 토양이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은 없는가〓시민단체들은 상징적으로 한 개의 러브호텔을 매입해 단계적 폐쇄를 요구하고 있으나 고양시는 용도변경 유도 외에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선의 방법으로는 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방안이 거론되나 거액의 투자비를 들인 점으로 미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동영기자>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