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김형찬/의사의 '메스'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46분


‘메스’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의사를 믿고 그의 메스 앞에 몸을 맡기는 사람을 치료할 수도 있지만, 메스를 들고는 “배 째!”라며 자해(自害)의 방법으로 상대를 협박할 수도 있고 빵을 삼등분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지금 의사들의 손에 들린 채 병원을 나와 협박과 자해를 겸하고 있는 메스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한편 의사 자신의 몫도 챙겨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가지고 있다. 비싸다고 해서 치료받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수요와 공급의 시장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의료시장’에서, ‘약물 오남용 방지’라는 의약분업의 명분과 함께 의사의 ‘몫’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서비스 제공자' 선택

파업의 결단을 내린 의사들보다 더 ‘절박’한 환자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그간의 의약분쟁을 통해 우리는 이미 적지 않은 것을 얻었다. 우선 그 동안 낮은 의료보험 수가를 보충한다는 명목으로 과잉진료와 약물 오남용이 정부의 묵인하에 공공연히 행해져 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는 것만도 커다란 수확이다. 의료 정보의 공개는 의사나 약사에 대한 기존의 ‘불합리한’ 신뢰를 붕괴시킨 대신 의료 체계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앤서니 패그덴교수가 밝혔듯이 정보 유통의 제한과 구성원 집단간의 사회적 법적 불평등은 그 사회의 ‘신뢰’를 급속도로 파괴하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는 ‘사회적 신뢰망’ 대신 혈연 지연 학연 등의 배타적인 ‘사적 연결망’을 발달시킨다. 그래서 의료체계나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 대신 사적 ‘연줄’의 한 끄트머리라도 통해야만 ‘믿을 만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해 왔던 사람들로서는, 의사들의 불합리한 권위나 신뢰와 함께 이런 ‘사적 연결망’에 의존할 일 중 하나가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환자와 함께하는 개혁을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이번에 파업에 나선 의사들은 중요한 선택을 한 셈이다. 그 동안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적 혼돈 속에서도 ‘의료기술’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사적 연결망 뒤에서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던 의사들이 기존의 사회적 권위와 존경과 신뢰를 버리고 평범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로의 변신을 택한 것이다. 더욱이 의사들은 민주화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현대사가 겪어 왔던 지난한 투쟁과 희생의 역사를 조롱하듯,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단숨에 실현하기 위해 환자를 외면하고 극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왜 의사만 가지고 그러냐고 원망할 필요는 없다. 의료보험제도를 정착시킨다며 의료 체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는 의약분업을 하겠다며 구체적 준비도 없이 밀어붙이는 정부보다는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간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직업이기에, 항상 긴장과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 의사의 인력시장에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 공급될 만큼의 보상은 국민들도 인정할 것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 곳곳에 얽혀 있는 배타적인 사적 연결망을 합리적인 사회적 신뢰망으로 바꾸는 것은 언젠가 밟아야 할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미 그 길에 들어선 의사들이 이제 자신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버린 ‘고객’에게 적응하는 일은 파업의 선택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의사들이 첫 번째 할 일은 바로 ‘의사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도 없이 ‘메스’ 앞에 몸을 맡겨야 될 고객들에게 돌아가 합리적인 신뢰를 다시 구축하며 고객과 함께 병원 ‘안팎’에 숱하게 쌓인 난제들의 개혁을 지속하는 일이다.

김형찬<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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