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대만 2기 내각' 민진당 인사로 주축

  • 입력 2000년 10월 5일 18시 50분


대만 정국이 탕페이(唐飛)행정원장의 전격 사임으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거국내각’의 상징이었던 탕원장은 3일 사임의 변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실제 이유는 천수이볜(陳水扁)총통과의 불화였다.

국무총리격인 새 행정원장에 4일 취임한 장쥔슝(張俊雄)행정원 부원장은 3월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선거지휘본부를 이끈 ‘킹메이커’이자 5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총통부 비서장(대통령 비서실장격)에 오른 천총통의 오른팔이다.

5일에는 민진당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제2기 내각’이 출범했다. 대공보 등 홍콩 언론들은 이를 “사실상 민진당 독자내각의 출범”이라고 평하고 “양안관계가 더욱 꼬이는 등 향후 대만정국이 순탄치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4일 대만 종합주가지수는 145.52포인트가 폭락,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6000선이 무너진 5,997.92를 기록했다. 5월 천총통 취임직후 기록한 최고치 9,115.47에 비해 무려 3,117.55포인트가 떨어진 것이다.

대만 재정부는 이에 따라 4일부터 11일까지 주가 1일 하락제한폭을 7%에서 3.5%로 긴급 재조정했다. 이 같은 대폭락은 대만 정부가 최근 5000억대만달러(약 17조5000억원)에 이르는 ‘국가안정기금’을 투입, 증시부양에 나서기로 한 직후에 일어난 것이어서 충격파는 더욱 크다.

▽불안한 동거정권에 종지부

탕원장이 사임하자 홍콩 언론들은 “이는 이미 예정된 일로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고 평했다. 애초부터 탕원장은 민진당이 단독내각을 꾸릴 때까지의 과도내각 수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39.3%의 낮은 득표율로 출범한 천수이볜 정권은 정국 안정을 위해 국민당 인사들을 다수 내각에 참여시켰었다. 국민당내 온건파로 국민당시절 국방장관과 행정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탕원장은 민진―국민당 연합정권을 상징하는 ‘얼굴 마담’으로는 적격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불안한 동거’였다. 대만 경제에 가장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안(중―대만)관계는 개선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만판 구조조정인 ‘헤이진(黑金·검은 돈) 청산작업’도 끊임없는 마찰음을 냈다. 정계와 재계는 ‘검은 돈의 고리 끊기’시도를 ‘국민당의 경제적 근거를 무너뜨리려는 의도’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 같은 판세에서 탕원장은 7월 하순 홍수로 고립된 인부들이 늑장구조로 떠내려가는 장면이 TV로 보도되면서 일어난 이른바 ‘바장시(八掌溪)사건’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고조된 틈을 타 사의를 표명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당과 민진당의 공약이 정면 배치된 원전 4호기 건설에 대한 이견을 구실로 탕원장은 마침내 사임했다.

국민당시절 시작된 원전 4호기 공사(총 공사비 1690억대만달러) 중단은 천총통의 선거공약이었다. 현재 전체 공정의 3분의 1이 진행된 이 공사를 중단하면 751억∼903억대만달러(약 2조600억∼3조1700억원)가 공중으로 날아가게 되고, 당초 이 계획을 추진했던 국민당은 곤경에 빠진다. 이 때문에 원전 건설 계속이냐 중단이냐는 대만 연합정권 붕괴의 ‘뇌관’이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국민당은 내각이 내년 예산안을 전면 재편성하도록 만드는 등 ‘정부 발목잡기’를 본격화했다. 이 같은 국민당의 ‘비협조노선’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전망. 따라서 대만 입법원(국회격)은 향후 국민당과 민진당이 사사건건 부딪히는 대결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안관계 더 꼬일 듯

양안관계도 더욱 순탄하지 못할 전망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일 장쥔슝 신임행정원장의 임명사실을 한 줄 짜리 기사로 짧게 처리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인 대공보는 5일 논평기사에서 “대만인들은 앞으로 민진당이 어떤 정당인지, 대만독립의 본질과 그 같은 주장의 위해성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이라며 대만 독립 경향 강화를 우려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대만전문가 리자취안(李家泉)연구원은 4일 홍콩 명보와의 회견에서 “독립색채가 농후한 장쥔슝의 행정원장 임명으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심화되고 양안관계 개선도 한층 어려워지게 됐다”고 논평했다.

중국에서는 장원장이 천총통처럼 은밀히 독립을 추진하는 위험한 존재로 평가하고 있으며, 총통과 행정원장이 한목소리로 독립을 추진할 경우 견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원장은 5일 행정원 부원장에 라이잉자오(賴英照)전대법관을, 재정부장에 옌칭장(嚴慶章)재정부 차관을, 정부대변인인 신문국장에 쑤정핑(蘇正平)대만일보 논설주간 등을 내정했다고 말했다. 린신이(林信義)경제부장도 경질설이 나돌고 있다.

장원장은 부분개각에 임해 “야당도 정치안정을 위해 정부에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 제2기 내각이 ‘흔들리는 대만호’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기태기자·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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