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10년]자동차회사 회장 사타예프 인터뷰

  • 입력 2000년 10월 1일 18시 44분


“러시아 시장은 위험하지만 수익성도 높다. 러시아로 진출하려는 외국기업은 먼저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아 합작형태로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스크바의 자동차판매회사인 ‘압토미르’의 예브게니 사타예프 회장(36)은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 90년 가을에 우리 회사가 세워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96년부터 대우자동차 판매에 주력해 온 이 회사는 한―러 관계가 발전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압토미르는 이제 대우사태 등 한국의 경제상황에 일희일비할 만큼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공업물리대를 나온 이학박사 출신인 사타예프 회장은 80년대 말 ‘조그만 장사’를 시작해 3000달러(약 350만원)를 모았다. 90년 이 종자돈으로 러시아 국민차인 ‘쥐굴리’ 2대를 사서 되판 것이 사업의 시작. 2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10년 만에 1000여명의 직원에 10여 개의 매장과 서비스센터를 갖췄다. 1년 매출 약 2억달러(약 2300억원) 규모로 초고속 성장을 했던 것.

급성장의 비결을 묻자 그는 “러시아에서 우리처럼 주머니돈을 털어 몇 년 만에 수백배씩 성장한 기업이 어디 한 둘이냐”며 겸손하게 되물었다. 사타예프회장은 90년대의 급격한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 성공한 수많은 젊은 ‘노브이 루스키(신흥부유층)’ 중의 한명.

그가 한국차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극적이다. 96년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에 대우가 조립공장을 세우자 무작정 돈을 들고 찾아가 20대의 승용차를 사서 모스크바에서 판 것이 첫 거래. 그때까지 이 회사 알렉산드르 미트코 사장이 89년 대우 비디오를 일제인줄 잘못 알고 사 본 것이 ‘대우’라는 브랜드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대우는 97년부터 작년까지 러시아 외제차 판매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압토미르가 큰 역할을 했다. 한국차가 성능에 비해 가격이 싼 편이어서 러시아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 압토미르가 성공한 비결인 셈. 지난해 이 회사가 판 3000대의 외제차 중 대우차는 2300대로 지금까지 7000여대의 대우차를 팔았다. 내친 김에 현대차와 기아차도 팔려고 협상을 벌였으나 현대측의 거절과 기아사태로 무산됐다고 털어놓은 사타예프 회장은 “한국차가 러시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최근 효자노릇을 해왔던 ‘한국차’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다. 사타예프 회장은 “대우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제대로 차를 공급받지 못해 주문이 밀려들어도 못팔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우가 주춤하는 사이 러시아에 현지공장을 세운 프랑스의 르노와 체코의 스코다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98년 러시아 경제위기 때는 직원의 30%를 감축하고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힘든 상황을 맞기도 했다. 사타예프 회장은 “그래서 지금 대우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몇 차례 초청을 받았지만 한국에는 한번도 가지 못했다는 그는 “한국기업과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고 한국기업이 공격적으로 경영을 한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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