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수영]다이빙 윌킨슨의 '기적의 물보라'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55분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다이빙의 세계적 전문가들도, ‘날고긴다는’ 베테랑 취재기자도, 어느 현장에든 있다는 사진기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다이빙의 24일밤 다이빙 10m 플랫폼 여자부에서 미국에 36년만에 금메달을 안긴 로라 윌킨슨(22).

평소 자국 선수사진에만 너무 치중한다고 비난을 받던 AP 통신 사진기자는 으레 그랬듯 중국이 메달을 ‘싹쓸이’할 것으로 보고 앵글을 중국 선수에만 맞췄고 결국 ‘돌출한’ 금메달리스트의 화려한 ‘비행 장면’을 담지 못했다.

그럴만도 했다. 윌킨슨은 예선 5위에 이어 준결승에서도 5위에 머물러 메달가능성이 희박했고 중국의 쌍쉐와 리나는 준결승까지의 9차례 다이빙을 모두 1, 2위를 마크해 결승전 직전 윌킨슨과는 점수가 무려 43점이나 벌어졌기 때문.

각자 5번 다이빙을 하는 결선에서 윌킨슨은 1, 2차에서 역시 5위를 차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3차에서 윌킨슨은 난이도 2.7짜리 리버스다이빙을 수면에 거의 물보라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최고점수를 낸 윌킨슨은 이후 2차례를 더 1위에 오르며 우승을 차지, 세계 다이빙계를 경악시켰다.

반면 복병의 출현에 당황한 중국의 쌍쉐는 내리 3차례를 4등, 리나도 두 번이나 3등으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무너졌다.

윌킨슨이 올림픽 다이빙 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투혼과 여유, 그리고 신앙의 힘.

7년간 체조를 하고도 기량이 늘지 않아 어머니의 권유로 16살 때 늦깍이로 다이빙에 입문한 ‘텍사스처녀’윌킨슨은 지난 3월 연습 중 오른쪽 발을 세군데나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연습에 지장받을까봐 올림픽 직후로 수술을 미뤘다.

지금도 발등쪽으로 뼈가 불쑥 튀어나와 걸을 수 없을 정도. 경기 당일에도 그는 플랫폼까지 가약용 신발을 신고 올라가 다이빙 직전에 벗고 다이빙을 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도약직전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듯 관중석을 돌아보는 것.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출 때 불안감이 없어져요”라고 유세풍 포즈를 설명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다이빙 때 마다 ‘내게 능력 주시즌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는 빌립보서 4장 13절을 외우며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나 투혼과 신앙 외에 그에겐 독특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정.

4차 다이빙을 시도하려 플랫폼을 올라가지 직전 켄 암스트롱코치는 윌킨슨의 귀에 대고 “힐러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라”고 속삭였다.

힐러리 그리비치는 다이빙을 함께 하다 3년전 자동차사고로 숨진 윌컨슨의 둘도 없는 친구.

갑작스런 코치의 주문에 깜짝 놀랐다는 윌컨슨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결국 역사적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친구를 위하여….”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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