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오야기 아즈코/日 '浮島丸사건'처리 문제많다

  • 입력 2000년 9월 24일 19시 26분


일본 도쿄(東京)의 유텐지(裕天寺)에는 유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한 한국인들의 유골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1945년 8월 24일 귀국 도중 침몰한 우키시마마루(浮島丸)사건의 희생자 유골 280구가 있다. 우키시마마루는 일본해군특설수송함으로 승선자는 오미나토(大湊) 해군시설부의 조선인 군무원과 징용자 및 그 가족들이었다.

우키시마마루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에 공식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유골 반환을 요구했다. 일본은 일본군과 군무원으로 일했던 한국인들에게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지만, 유텐지에 있는 유골에 대해 밝혀진 것을 알리고자 한다.

우선 유골 반환을 재판으로 호소하게 했다는 문제가 있다. 제사를 맡는 유족이라고 인정되면 유골은 정중하게 반환돼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유골반환은 한국과의 외교문제라면서 유족이 직접 유골을 받아가지 못하게 했다. 할 수 없이 재판으로 호소하니, 과연 반응이 있어 최근에도 변호단과 상의했다. 그러나 일본의 태도는 유족의 감정을 짓밟는 것이었다.

우키시마마루사건 희생자 유골은 배의 인양이 늦어졌기 때문에 누구의 유골인지 특정할 수 없었다. 일본은 사망자가 524명이라는데, 수용된 유골은 그 숫자에 맞춰 나눈 뒤 사망자 명단의 일본이름을 붙이고 한사람 분씩 납골항아리에 넣은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사망자 본인의 유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유족들은 일본에서 그 설명을 듣고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일본의 설명을 받아들여 유골을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유골반환이 50년 이상 늦어진 사실에 대한 사죄 △유골이 안치돼 있던 유텐지나 우키시마마루가 침몰한 마이즈루(舞鶴)에서의 위령제 △위령제 비용 1인당 10만엔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위령제에 대해서만 동의했을 뿐, 사죄도 비용 부담도 거부했다.

전승열(全承烈)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그는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네 아버지는 일본이 죽였다. 유골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들었으며, 많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일본에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였다. 1992년 우키시마마루사건 사망자 명단의 일부가 신문에 보도됨으로써 처음 그 중에서 아버지의 일본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나 반환을 청구한 유골은 아버지의 진짜 유골이 아니었다. 그래도 고민 끝에 받아 모시기로 결심한 전씨에게 일본은 사는 물론 10만엔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거부한 것이다. 전씨는 너무나 무도한 일본의 태도에 화가 나 유골을 반환받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전씨만의 일이 아니다.

유텐지에 보관돼 있는 유골에는 본적과 일본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일본은 유족을 찾지도 않고 유족이 나타나도 위령제 비용조차 부담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이미 일본사람이 아니니까, 즉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을 일본인 자신의 손으로 변혁하는 일에 나는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아오야기 아즈코(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촉진하는 모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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