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면복권, 원칙을 세우자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05분


사면 복권이란 법원이 내린 확정 판결의 효력을 대통령이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사법권을 무력화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지극히 예외적으로, 또 신중하게 이뤄져야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사면 복권의 역사는 얼룩진 헌정사와 궤를 같이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엔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량 구속 사태가 빚어졌고 얼마 안가 ‘국민적 화해’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시국사범을 사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또 6공화국 이후에는 권력형 부패사범을 풀어주는 구실로 사면권이 남용돼 왔다.

정부가 8·15 광복절을 맞아 대규모 사면 복권 및 감형 가석방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정부는 새천년 들어 처음 맞는 광복절인데다 남북관계의 급진전에 따른 민족대화합 차원에서 3만여명에 대해 은전(恩典)을 베풀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민족대화합과 인도주의 차원의 사면 복권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정치개혁과 부패척결을 외쳐온 국민의 정부가 선거사범과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부패 정치인까지 대화합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데 대해선 선뜻 동의할 수 없다.

한편에선 16대 선거사범의 엄정수사를 강조하고 법원도 피선거권 박탈 등 엄벌원칙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한편에선 15대 선거사범의 사면 복권을 논의한다는 것은 법치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패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심을 돌리기 위해 대대적인 사정을 한 뒤 금세 ‘과거를 털고 가야 한다’며 그들을 사면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과연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묻고 싶다.

이제 사면 복권에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정부수립후 한해 1.6회 꼴로 시행해온 우리나라 사면 복권의 역사가 말해주듯 국경일마다 으레 비리정치인 등을 포함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하는 것이 원칙일 수는 없다. 국민의 정부도 2년 사이에 5차례나 사면 복권을 단행했고 그 때마다 국민적 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특정 정파와의 화해 등 정권의 생색내기 의도가 깔려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것은 결국 법집행의 공정성,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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