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공화당의 美國'이 올텐데…

  • 입력 2000년 7월 20일 20시 09분


미국 조지아주의 휴양도시 서배너는 ‘케인스의 눈물’로 유명한 곳이다. 2차 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46년. 이곳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창립총회가 열렸다.

IMF는 존 메이나드 케인스라는 영국의 경제학자가 고안해낸 것이다. 그도 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 도중 대성통곡을 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주로 내용을 크게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이 회의 이후 화병을 얻어 이내 사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결정족수였다. 당시 미국측 대표이던 화이트 재무장관은 85%로 하자고 했다. 의결정족수를 85%로 하면 15% 이상의 지분을 가진 나라가 반대할 때 어떤 의결도 할 수 없게 된다. 거부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15%를 상회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케인스는 결사 반대했다. IMF가 미국의 식민기관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미국은 회원국들에 압박을 가해 85%안을 관철시켰다. 바로 이 조항으로 인해 IMF는 지금도 단 돈 1달러를 쓰려고 해도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3년전 우리가 IMF와 구제금융협상을 벌인 적이 있다. 서머스 재무장관(당시 부장관)이 협상장인 서울 힐튼호텔에 묵으면서 IMF 실무진을 조종한 적이 있다. 우리의 애국 경제학도들은 ‘미국의 간섭’이라며 비난을 퍼부었지만 서머스는 주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맞섰다. 미국은 국제수지에서 적자가 나도 큰 걱정이 없다. 돈이 모자라면 연방은행을 통해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미국의 돈은 바로 세계의 돈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국제경제의 엄연한 현실이다. 2차대전 이후의 세계경제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소련의 붕괴로 견제 세력마저도 없어졌다.

그 막강한 미국에 정권교체의 조짐이 있다. 선거는 11월이다. 불과 4달밖에 남지 않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50년 만에 처음으로 공화당이 대통령과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의 정당은 색깔이 분명하다. 특히 경제분야에서의 정책 차이가 심하다. 부시가 당선되고 의회마저 차지한다면 공화당은 작심하고 자기 색깔을 낼 것이다. 공화당은 부자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한다. 신보수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근본 틀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난 8년간 민주당의 진보정책에 익숙해왔던 우리로서는 충격을 받을 게 뻔하다.

우리는 미국의 정권교체기마다 진통을 겪어왔다. 포드에서 카터로 넘어갈 때에는 주한 미군철수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이 있다. 지금 우리 정부의 미국통들은 친민주당 일색이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초청받은 고위층 실세가 한 명도 없다.

미국의 독주를 옹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에 기생해 살아가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일 뿐이다. 살아남자면 미국의 흐름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내홍(內訌)만 일삼는 사이에 세계는 변해가고 있다. 미국 선거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김대호 tige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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