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초읽기시계 도입후 시간패 잇따라 '주의보'

  • 입력 2000년 7월 18일 18시 37분


“기계가 편리할 지는 모르지만 역시 인정머리가 없어.”

한국기원이 5월 자동으로 초읽기를 해주는 시계를 도입한 뒤 시간패가 잇따르자 기사들 사이에 ‘초읽기 시계 주의보’가 내려졌다. 1년에 한두번 나올까 말까한 시간패가 5월 이후 벌써 4차례에 이른 것.

최근 제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국내 예선에서 조훈현 서봉수 9단과 김승준 7단이 시간패로 탈락했으며 승단대회에서는 홍종현 8단도 시간패를 당했다.

초읽기 시계는 제한시간이 지나면 미리 입력된 목소리로 ‘하나 둘 셋…아홉’하고 초를 불러준다. ‘열’을 부를 때까지 바둑돌을 놓고 시계의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시간이 멈추면서 시간패임을 알려준다.

초읽기 시계는 예선전의 초읽기를 놓고 기사들의 불만과 항의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됐다. 계시원이 따로 있는 본선대국과는 달리 하루 10여판이 두어지는 예선대국에서 초읽기에 들어가면 초를 불러줄 사람이 없어 한국기원 연구생과 직원들이 부랴부랴 동원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사람이 초를 부르다 보니 아무래도 정확하지 않아 공정성 시비가 일기도 했다.

한 기사는 “사람이 초를 읽는 체감 속도가 1초에 한번이 아니라 2초에 한번 정도”라며 “어떨 때는 ‘마지막 10초입니다. 하나 둘 셋 …아홉…(잠시 쉬었다가) 마지막 아홉입니다’하고 한 템포를 늦춰 주는 ‘인정넘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정동식(鄭東植) 사무총장은 “초읽기 시계 도입은 불필요한 시비를 막고 비용도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천히 초를 부르는 ‘사람 초읽기’에 젖어있던 기사들이 속도가 정확한 ‘기계 초읽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조훈현 9단이나 홍종현 8단은 초읽기에 들어간 뒤 바둑돌을 놓고도 시계 스위치 누르는 것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시간패 당한 경우. 서봉수 9단과 김승준 7단은 ‘아홉’하는 소리를 듣고 바둑돌을 놓은 뒤 시계 스위치을 눌렀지만 손을 옮기던 도중 시간이 지나버린 경우다.

기계 초읽기에 가장 능숙한 기사는 15세의 조혜연(趙惠連) 2단으로 그녀의 별명은 ‘쌍권총’. 조2단은 초읽기 시계가 아홉을 부르는 순간에 한손으로 바둑돌을 놓는 동시에 다른 한손으로는 시계 단추를 누르는 ‘신기(神技)’를 보여준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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