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존]액션영화 키드의 '좋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 입력 2000년 7월 17일 17시 21분


마침내 액션영화 키드가 나타났다. 영화제목을 빌면 그가 만든 영화는 '좋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건 이상하다. 이 영화는 잘 만든 '작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거칠고 서투르며 치기 만만 하지만 묘한 쾌감을 준다. 감독 류승완은 전혀 새로운 영화와 지극히 상투적인 영화의 틀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곡예를 한다.

진부한 상황으로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영화의 수수께끼다. 그것은 4편의 단편을 이어 붙인 형식도, 액션 장면에 등장인물의 인터뷰를 끼어 넣는 치기도, 클라이맥스를 교차편집으로 마무리하는 기교 때문도 아니다. "자기 걸음을 지도하는 이는 자기가 아니나니..."란 성경 구절로 맺음 하는 주제, 요컨대 인생이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류 인생에게 그건 더 절실하다.

삶이 공평한 것이며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위대한 깡패영화는 깨트린다. 유명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죽거나 나쁘거나>는 심지어 좀 더 과격하게 그 환상을 비틀어버렸다. 거칠지만 솔직하다.

류승완이 액션영화 키드라고 하지만 이 데뷔작에는 액션영화의 율동감, 비장미,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바로크주의가 없다. 류승완은 성룡의 정교한 액션이나 오우삼의 폭력 안무나 스콜세지의 발작적인 카메라 움직임의 기운을 체화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못 만든 영화인데도 <죽거나 나쁘거나>는 선배 액션영화의 계보에 감히 한 자리 비집고 들어가려는 패기가 있다.

선배 영화를 흉내내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막 가능성을 보여준 스타일의 시도일 뿐이며 오히려 스타일만으로 포장할 수 없는 어떤 진심을 드러낸다. 그것은 놀랍다. 신출내기 감독이 위대한 깡패영화의 분위기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깡패들의 비극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것도, 형사와 깡패로 운명이 엇갈린 석환과 성빈 두 남자의 행보를 영웅적으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며, 또 그 두 남자 사이의 관계에 끼어 들어간 석환의 동생 상환이 초장부터 어긋난 인생 끝에 죽음을 맞는 말로를 보여주는 것도 손톱만큼의 과장이 없다.

류승완은 선배 액션 영화들과 기교로 경쟁할 수 없는 지점에 자기 색깔을 심어놓고 그러면서도 천하의 액션영화를 만들겠노라고 큰소리치는 기개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재미있는 데뷔작인 것이다.

무명배우의 낯선 얼굴과 어색한 연기로 끌고 가는 <죽거나 나쁘거나>에는 낭만적 영웅주의가 끼어 들어갈 틈이 없다. 꼭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기존 액션영화의 영웅주의를 해체하고 아주 극단으로 비감한 현실을 밀어붙인다.

이소룡의 결투장면을 인용하는 대목. 첫 번째 에피소드 '패싸움'의 한 장면에서 석환은 마음속으로 이소룡을 꿈꾸며 상대에게 발 차기를 날리지만 그가 하는 것은 결국 상대와 합이 맞지 않는 '막싸움'이다. 또 있다. 네 번째 에피소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는 <영웅본색>의 그 유명한 장면, 퇴락한 주윤발이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장면이 삽입돼 있다.

그러나 결국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장렬한 총격전의 비장한 최후가 아니라 개싸움 같은 집단 난투극과 일대일 난투극을 교차 편집한 처절한 장면으로 끝맺는다. 칼과 몽둥이가 동원된 처절한 유혈전 끝에 몸이 걸레가 돼 죽어 가는 상환의 모습, 상환을 칼받이로 내몬 성빈에게 복수하려다가 두 눈을 찔려 피를 철철 흘린 채 절규하는 석환의 모습은 제목 그대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다.

<죽거나 나쁘거나>의 소재는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엇갈린 운명과 남자들의 자멸극은 샘 페킨파 이래 유구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오우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방에 끝나지 않고 티격태격하는 싸움은 성룡의 영화에서 익히 본 것이다.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삼류 인생의 유혈극은 마틴 스콜세지 영화의 주제이다.

류승완은 이런 소재의 껍데기에 구체적인 세부를 심어놓았다. 당구장에서 고삐리들이 패싸움하는 정경,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타박 받는 전과자 젊은 아들, 야간고등학교를 다니며 폼 나는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양아치 사내아이의 욕지거리는 구체적인 실감을 낸다.

학창시절의 친구에서 원수가 된 형사 석환과 깡패 성빈의 운명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것도 영화적인 인용으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삶의 초라한 조건을 툭툭 건드리는 패기로 접수했다. 그리고는 기교로 덮을 수 없는 부분을 타란티노식의 나선형 구조로 맞물리는 4부 작 구성을 통해 욕지거리 수다와 이야기에서 잠시 빠져 나온 등장인물의 인터뷰로 채워 넣었다.

<죽거나 나쁘거나>는 짬뽕 구성이지만 선배 액션영화의 벽을 뛰어넘어 자기만의 스타일과 주제의 성을 쌓을 저력을 감추고 있다. 감독 류승완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에서 이뤘던 것과 비슷한 것을 해냈다. 오우삼의 피투성이 낭만 혈극에서 낭만적인 기운을 뺀 유혈극을 담은 것이다. 분명하게 영화광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영화인용의 진부함을 삶의 진부함과 대면하는 패기로 맞바꾸고 있다.

<김영진(hawks@film2.co.k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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