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책연구기관의 '반항'

  • 입력 2000년 7월 4일 22시 56분


정부에 유리한 보고서만 내도록 해당부처가 산하 연구기관을 윽박질러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산 지원과 감독기능을 갖고 있는 정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혹간 알면서도 왜곡된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연구기관의 입장이었다. 급기야 한국개발연구원과 금융연구원은 그간의 비합리적인 정부 간섭을 비판하며 한때 독자적 행동을 선언하기까지 이르렀다. 보건사회연구원도 공적연금 비판 논문의 발표를 정부가 막은 것과 관련해 집단 반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은 각 부처의 정책수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싱크 탱크(두뇌집단)이다. 올바른 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전문연구인력이 정책안을 검증하고 최상의 정책방향을 제시토록 하자는 것이 설립의 목적이다. 따라서 정부에 비판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 존립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연구결과는 정부의 정책 수립에 기초가 되기도 하고 민간 부문에서 사업을 계획하는 데 요긴한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구 기관의 보고서가 객관성과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근거로 한 사업들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국가가 손실을 입으면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된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정부가 통계를 조작토록 종용하거나 전망치를 수정토록 압박하고 있다는 연구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국민 기만 행위이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그 정부를 믿지 않게 된다. 차제에 사실 여부를 조사해 책임 소재까지 가리는 것이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연구원들에게 언론 매체와의 접촉을 제한하거나 의견개진을 막는 일도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지식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자는 것이 시대적 요구가 아닌가.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막고 연구원들의 자존심을 이토록 손상시키면서 좋은 보고서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심화되었다는 연구원들의 주장은 실망스러울 뿐이다. 시대가 바뀌고 민주화 의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도 국책 연구기관들을 시녀 정도로 여기는 권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혹 연구 결과가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이들을 행정부내 언론이라고 여겨 넓은 가슴으로 수용하는 것이 성숙된 모습이다.

우리는 정부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국책연구기관들의 ‘반항’에 주목하며 해당 부처들의 성의 있는 개선 노력을 예의 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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