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영화]'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50분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는 영화가 얼마나 선동적이고 위험한 매체일 수 있는가를 소름끼치도록 생생히 반증한다.

월남전에서 걸프전까지 온갖 전쟁터를 누빈 전쟁영웅 칠더스 대령(사무엘 잭슨). 예멘에서 벌어진 반미 군중소요 속에서 미국 대사를 구출하라는 임무를 수행중이던 그는 비폭력적이라고 들었던 군중속에서 총알세례가 쏟아지자 군중에 대한 무차별 사격을 명령한다. 결과는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수백명의 사상자. 미국정부는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칠더스를 군사법정에 세우고 그에게 목숨을 빚진 하지스대령(토미 리 존스)은 옛 전우를 돕기 위해 변론에 나선다.

현실적 폭력에 대한 상황윤리를 정공법으로 제시해 자극적이면서도 지적인 게임의 냄새를 풍기던 영화는 이때부터 철저히 교란전술과 위장전술로 일관하면서 음모이론에 대한 마녀사냥식 흥분감에 도취해 대량학살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희석시킨다.

거장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자신이 만든 ‘엑소시스트’의 악령에게 신들린 것일까.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현란한 법정공방이라는 영화적 마술로 관객의 넋을 빼놓고는 총알구멍 투성이의 성조기를 통해 미국인들 마음속에 숨어있는 쇼비니즘의 악마들을 불러들인다. 제목의 의미는 교전수칙. 15세이상관람가. 7월1일 개봉.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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