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행 구조조정 아직 '조정중'?

  • 입력 2000년 6월 29일 18시 44분


한국 금융산업의 100년 경쟁력을 좌우할 정부의 구조조정 작업이 은행노조의 단체행동이란 최대의 암초를 만났다.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은행 노조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일차적으로 비난이 쏠리고 있지만 각종 정책시행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듯한 인상을 준 금융당국의 잘못도 지적됐다.

▽파업으로 치닫는 은행노조들〓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의 지주회사를 통한 통합과 신관치 거부를 구호로 내건 은행노조들은 임시국회 개원 2일전인 다음달 3일 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다. 노조측 분위기가 격앙돼 있어 11일로 예정된 파업개시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 H은행 관계자는 “이미 파업 실행계획을 짜는 단계”라며 “전산분야 노조원까지 파업에 가세할 경우 금융대란까지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은 “금융지주회사 법안저지가 노조측의 일차 목표”라며 “노조의 주장은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발 물러서는 정부〓당장 국회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을 처리해야 하는 정부는 좌불안석이다. 이헌재 재경부장관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주회사를 통한 구조조정안만 제시했을 뿐 정부가 특정은행 이름을 들먹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재경부나 금감위 관리들이 지주회사 밑에 들어올 만한 은행들을 수차례 언급했던 것에 비하면 후퇴한 발언이다.

이용근 위원장은 27일 오전 이남순 한국노총위원장을 만나 “지주회사 방안은 공적자금 은행들의 통합(integration)을 의미하며 결코 합병(merge)은 아니다”고 설득했다. 이위원장은 또 “해당은행이 반발할 경우 강제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 지주회사로 묶은 뒤 기능별로 은행들을 재편하는 구조조정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신뢰 추락도 한 요인〓은행노조들의 강성분위기에는 지주회사를 통한 통합도 결국 인원감축 등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금융 당국은 “지주회사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일부 은행들이 망할 때까지 끝까지 가보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민세금(공적자금) 투입을 줄여야 하는 정부로서는 방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반면 노조측은 정부정책의 신뢰성에 딴죽을 걸고 있다. 지주회사 방안도 결국 합병을 위한 정지작업에 불과하다는 것. 은행 경영진들도 “최근 정부가 화해제스처를 취하곤 있지만 또 언제 입장이 바뀔지 불안하다”고 털어놓고 있다.은행 노조들은 부실 종금사와 은행들간 짝짓기, 채권투자펀드 투자액 할당 등을 대표적인 ‘신관치’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여론전을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지주회사 도입을 둘러싼 정부와 은행노조간 갈등은 현 경제정책 당국의 퇴진논쟁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래정·박현진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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