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성돈/'전자정부 기본법' 만들자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앞으로 3개월 후면 이른바 ‘전자정부(e-Government)’의 시대가 개막된다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24일 선언했다. 전자정부는 간단히 말해서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제반 업무를 세계적인 인터넷 책 판매회사인 아마존닷컴(amazon.com)처럼 처리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들 방관에 지지부진▼

즉 국민 누구나 정부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단일한 정부대표 웹사이트에 단 한번의 접속으로 들어가 정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전자정부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일을 컴퓨터와 같은 기계가 처리하고 공무원들은 보다 더 어렵고 가치 있는 일에 종사할 수 있게 되는 정부이기도 하다.

사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놀라운 뉴스가 아니다. 전자정부 구현사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추진돼 왔거니와 단일한 정부 대표 웹사이트를 통한 정부서비스의 제공과 정보 공개는 영국 싱가포르 호주 핀란드 스웨덴 등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미 현실화돼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접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전자적 행정서비스의 수준을 넘어 전자적인 방법으로 주민 발안과 주민소환, 주민투표까지 하는 ‘네트워크 페리클레스’라는 이름의 전자민주주의까지 실험 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정부와 관련된 정부 사업만큼은 꽤 오래 전에 시작됐다. 87년부터 5년씩 10년에 걸쳐 제 1, 2차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이 추진됐고 97년부터는 2010년까지를 목표로 약 45조원 규모의 초고속정보통신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자정부 구현 사업에 그동안 우리가 들인 노력과 시간, 투입된 돈의 규모, 그리고 우리나라 행정업무의 상대적 규모를 생각할 때 이제는 우리도 미국과 같은 전자정부시대의 개막을 알릴 수 있을 때가 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0년부터 2005년에 걸쳐 문서관리의 전자화,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 특허출원 전자화, 정부종합법률정보센터 구축, 국세 관세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전자마을 구축, 전국 온라인 호적정보시스템 구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중장기 종합계획이 행정자치부에 의해 안(案) 수준에서 검토되고 있는 정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구현 단계에 들어간 전자정부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겨우 계획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이들 나라보다 기술이 뒤떨어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 분야 전문가가 없어서는 더욱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들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의 전자정부 구현사업은 공무원들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업이 아니라 ‘하면 좋고 안해도’ 해당 기관이나 공무원에게 구체적인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선택 사양적’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자적 공간에서 각종 업무가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처리돼 온 각종 업무처리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설계돼야 하는데 기존의 권한를 변화시키는 이런 일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여러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나눠 처리하던 복합 민원 업무들을 전자적 공간에서 단일 창구를 통해 처리하기 위해서는 부처 간에 엄청난 협력이 필요한데 소위 부처 독립의 원칙이 너무나도 철저하게 고수되기 때문이다.

▼기획-조정위한 사령탑 있어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 핵심적인 각종 전자정부 구현 사업들이 공무원들 사이에서 선택사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전자정부기본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각급 정부기관에서 추진되는 전자정부 구현 사업들이 모두 언제까지 어떤 성과를 낸다는 형태로 계획이 발표돼야 한다. 또한 실제로 성과를 냈는지를 면밀하게 평가하여 결과에 따라 해당 기관장과 담당 공무원에게 철저하고도 엄중한 상벌이 뒤따라야 한다. 아울러 각급 정부기관에 의해 추진되는 전자정부 구현 사업을 현재의 정보화추진위원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기획, 조정, 평가, 지원할 수 있는 사령탑이 생겨야 한다. 정보화 전담 대통령수석비서관의 신설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황성돈(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한국전자정부 입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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