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도움안되는 검찰의 과욕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34분


의사의 폐업으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환자가 숨졌다면 의사에게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검찰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대검은 20일 환자가 숨진 경우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의한 살인죄’까지도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법 감정’으로 보면 검찰의 방침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지 않는 의사들의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정신’은 다르다. 법은 범죄 성립의 주관적 요건으로 ‘고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죄도 살인의 고의가 있어야 인정된다. 형법이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가 아닌 것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법학의 ‘상식’이기도 하다.

검찰의 ‘미필적 고의’ 논리에는 무리가 있다. 미필적 고의란 행위자가 결과발생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감수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옥상에서 무거운 돌을 들고 ‘행인이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돌을 떨어뜨려 행인을 죽게 하는 경우다. 법조인들은 폐업의사들이 물론 잘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살인범’으로 몰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대법원 판례도 미필적 고의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결과발생의 인식뿐만 아니라 결과발생의 ‘의지’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물론 폐업의사들을 엄벌하겠다는 검찰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업무방해나 과실치사 등 의사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법 전문가들이 법의 정신을 어겨가면서 의사들을 무리하게 살인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온당하냐는 것이다. 또 그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한 판사는 검찰의 태도야말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협박’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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