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평양파티' 커튼 뒤에는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27분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합의에 성공한 양쪽 정상이 맞잡은 두 손을 치켜올리며 흥분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테이블을 둘러싼 남과 북의 대표들이 감격에 젖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여 노래했다.

불과 한 주일 전 우리 국민은 이 꿈같은 장면에 흠뻑 젖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공항 마중부터 시작된 극적이고 역사적인 대사건은 포도주가 열 잔이나 돌아가면서 자정까지 이어진 방북 마지막 날 밤 파티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텔레비전 시청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화려한 파티의 커튼 뒤에 아직도 연간 150만t의 식량이 부족해 고통을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잔칫상에 재를 뿌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 파티장 밖의 또 다른 우리 민족, 그들을 위해서 경협은 웬만한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할 뿐이다.

▼북한特需 실체 뭔지 아리송

4월 김대중대통령이 “6월 이후 중동 특수를 능가하는 북한 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만 해도 남북정상회담은 추측의 범위 안에서 가장 멀리 있었다. 그래서 ‘북한 특수’라는 단어 자체가 생경하게만 들렸고 그게 그냥 총선을 앞둔 여당 총재의 정치적 발언이겠거니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이뤄진 뒤에도 대통령이 당시 언급한 북한 특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제대로 오질 않고 계산이 서질 않는다. ‘중동 특수를 능가하는 북한 특수’를 앞두고 있는데 왜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외평채는 치솟는 금리에도 불구하고 사려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고, 왜 도이체방크는 국제 투자자들이 한국채권 보유를 줄일 것으로 예고하는지도 궁금하다.

우리 중소기업의 노후 또는 사양(산업)설비를 북한에 이전하고 그 쪽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특수를 얻을 수 있다는데 국내총생산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이고 또 설비 이전 기업이 얼마나 많기에 중동 특수를 능가할 정도의 결실이 생길 수 있다는 건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따지지 말자. 어차피 남북경협은 더 큰 것을 위해 약속된 사안이고 또 판이 여기까지 벌어졌는데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공동선언문은 남북경협을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으로 요약하고 있다. ‘민족 경제’라는 표현은 남북을 아우르자는 뜻이고 ‘균형적 발전’이란 양쪽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것이 어느 한 쪽의 경제적 능력을 다른 한 쪽 수준으로 내리는 하향적 평준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해석이 타당하다.

그런데 북한 경제를 끌어올리는 방안에 대해 논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그로 인해 발생할 남한쪽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담’을 경고하기 시작한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 독일이 통합될 때 동서독의 경제 수준은 3배의 격차가 있었던 반면 우리 경우는 차이가 무려 12배(1999년 기준:한은통계)나 된다. 객관적 수치만으로 보면 서독보다 남한이 ‘균형적 경제발전’을 위해 퍼부어야 할 돈의 규모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10년내에 남한의 30% 정도까지만 끌어올린다 해도 5000억달러 이상 소요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우리가 1600억달러 외채중 일부 단기부채 때문에 환란을 맞았던 것을 생각할 때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독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나라는 60년대 후반부터 균형적 발전을 추진했고 우리는 지금부터 균형적 발전을 시도한다는 점뿐이다.

▼경협의 부담 미리 알려줘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만 할 수 있다면 경협은 계속되어야 한다. 남고 안 남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쪽이 이익이고 어느 편이 손해냐 하는 것은 더군다나 따질 계제가 아니다. 경협은 이 시대 우리 민족의 공생을 위해 주어진 숙명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 아래 정부는 이제 장밋빛 포장의 ‘특수’만 얘기하지 말고 국민이 안아야 할 부담과 희생의 정도를 당당하게 알려주고 마음의 협조를 얻도록 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남한이 경제 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들, 예를 들어 환경 파괴, 황금만능주의, 광란의 과소비 및 그에 따른 계층간 갈등 같은 것들이 북한의 발전 과정에서는 재발되지 않도록 조언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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