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르포]역사탐방로에 노점상은 눈엣가시?

  • 입력 2000년 5월 29일 20시 43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좋은 거리. 그 흔치 않은 거리가 서울에도 있다. 바로 한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에게까지 사랑받는 '인사동 거리'.

그러나 요즘 인사동길을 걸어가기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역사탐방로' 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기 때문. 한걸음씩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먼지와 소음공해도 만만치 않다. 그저 빨리 공사가 끝나기만을 바랄 따름.

그런데 걷기도 힘든 이 길에 천막을 치고 3일째(29일 현재)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노점상종로지역연합회 소속 인사동 노점상 70여명.

"역사탐방로요? 저희도 대환영입니다. 그런데 왜 노점상은 다 몰아내려고 하는 겁니까? 이건 저희 생존권이 달린 문제예요."

전국노점상종로지역연합회 김근기 부회장의 말이다.

문제는 7월에 '역사탐방로' 공사가 마무리되고 인사동일대가 '문화특구'로 지정되면 현재 '노점상 유도지역'으로 돼 있는 인사동 거리가 '노점상 절대금지구역'으로 바뀌어 실질적으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이들은 3·1독립선언유적지, 박영효선생 집터(現 경인미술관), 민영환선생 자결터, 율곡 이이선생 집터, 순화궁터 등 현재 비석만이 세워져 있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역사유적지들을 예로 들며 "말만 '역사탐방'일 뿐 기존 상가의 편익만을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인사동일대 상가 및 화랑들의 협의체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회장 임명석·이하 보존회)는 노점상들의 이같은 주장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임회장은 "앞으로 ASEM과 월드컵 개최 등으로 더욱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인사동을 찾게 될 텐데, 한국의 대표적 관광명소이자 문화유적지인 인사동이 온갖 노점상들로 뒤덮여 있다는 게 말이나 되냐"면서 "이대로 방치한다면 '역사탐방로' 조성으로 인도가 넓어진 후에는 더 많은 노점상들이 들어설 것"이라며 강력한 단속을 주장했다.

임회장은 또 노점상에서 취급하는 국적불명의 물건들과 위험하게 방치돼 있는 가스통 등 미관상의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한편 노점상 관리를 담당하는 종로구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선영남반장(가로정비계 가로정비반)은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진 게 없다"면서 "가급적이면 보존회측과 노점상측이 합의를 하도록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설령 '노점상 절대금지구역'으로 규정이 안되더라도 주 도로에서의 노점은 계속 단속할 것"이라면서 "골목 골목에 '거리카페'의 형태로 노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계획도 갖고 있지만 상가측의 반발이 심하다"고 덧붙였다.

조속한 해결과 협의를 위해 종로구청과 노점상측은 '3者 대면'을 요청하고 있지만 보존회측에서는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노점상측 역시 "생존권을 보장해줄 때까지 무기한 농성하겠다" 는 방침이어서 마찰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95년 인사동일대가 '일요일 차없는 거리'로 조성되면서 때마침 IMF와 맞물려 몰려든 노점상들. 이제 인사동에서마저 내쫓긴다면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노점도 하나의 문화입니다. 저희도 '역사탐방로'가 조성되면 외국의 왕이 와도 부끄럽지 않게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근기 부회장이 남기는 마지막 말.

지저분하고 무분별한 노점들의 난립은 분명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깔끔하게 늘어선 상점 안 세상만이 문화의 전부인 것은 아닐 터.

과연 노점들은 한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눈엣가시'이기만 할까? 어쩌면 '감초같은 관광의 묘미'는 아닐까?

김경희/동아닷컴 기자 kik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