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근로시간 단축 연내 법개정' 파문

  • 입력 2000년 5월 26일 23시 53분


우리나라도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될 것인가. 정부의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연내 법개정' 추진 방침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가 도출되면'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26일 최선정(崔善政)노동부장관은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의 확고한 의지'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때문에 정부가 노사 양측의 눈치를 보는 ‘소극적 입장’에서 '적극적 추'으로 전환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崔장관 "톤낮춰 설명말라"▼

▽연내 법개정 추진 배경=최장관은 이날 "근로시간 단축 특위라는 명칭에 이미 지향성이 담겨 있지 않느냐"고 했다. 또 자리를 뜨면서 보충 설명을 위해 자리에 남은 정병석(鄭秉錫)근로기준국장에게 "톤을 낮춰 설명하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하기도 했다.

최장관의 이날 발언은 물론 노동계 총파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노동계의 파업 자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관련 경제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며 강력한 추진 의사를 밝혀 단순한 노동계 무마책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이와 관련, 17일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다룰 특위 명칭을 놓고 재계가 '근로시간 제도개선 특위'로 하자고 주장할 때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이 "근로시간 단축 특위로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 청와대 삶의 질 향상 추진 기획단도 올 초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 대한 외부 용역 조사를 실시, 김유배(金有培)복지노동수석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시간 단축 쟁점=노동계는 올해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 40시간제를 도입해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과 고용창출을 모색하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반면 재계는 시기상조라는 입장. 또 유급 휴일 휴가를 모두 사용하고 법정근로시간 외 근무를 하지 않으면 실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하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시간이 지난해 기준으로 47.9시간인 상황에서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초과 근무수당 지출 등으로 14.7%의 임금 인상 효과가 나타나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근로시간 단축의 취지는 삶의 질 향상에 있는 만큼 임금을 낮추면서 하는 주 5일 근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반박한다.

▼日 주40시간-佛 35시간제▼

▽외국 사례=이웃 일본은 88년부터 99년까지 11년 동안 1주 48시간, 46시간, 44시간제를 거쳐 전체 사업장에 대해 주 40시간제를 도입했다. 단 중소기업의 자금난 등을 감안해 노동시간 단축 촉진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 기업의 규모 및 업종에 따라 3년씩 유예조치를 뒀다. 프랑스는 98년 6월 고용장관의 이름을 딴 오브리법을 제정해 법정 근로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했는데 2000년 2월1일부터 20인 초과 사업장에, 2002년 1월1일부터 20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하도록 단계별로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프랑스 등의 사례를 참조한다는 입장이다.

▼재계 "정부뜻대로 안될 것"▼

▽노사의 반응과 전망=정부의 '연내 법개정' 추진 방침에 대해 재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崔載滉)부장은 "현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그만큼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인지 모르겠다"면서 "다른 경제정책과 달리 노사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정부의 일방적 의도대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민주노총의 요구는 정부가 올 정기국회에 주 5일 근무제 도입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책임 있는 정책의지를 밝히라는 것"이라며"31일 총파업은 예정대로 강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이정식(李正植)기획조정국장은 "일단 환영하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법안 제출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줘야 하고 공무원 교사 등 공공 부문에서 주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와는 별개로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이 문제는 주 5일 수업제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과 관련되는 문제여서 각계 각층의 논란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정용관·이훈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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