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안 대책없나/전문가 좌담]"투신-은행 부실 밝혀야"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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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리면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된 데 대한 책임을 따지고 있으나 현장의 목소리와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본보는 25일 본사 회의실에서 시장전문가와 정부관계자를 초청, 최근의 금융위기를 긴급 진단하는 좌담회를 갖고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참석자

▼참석자

박현주(朴炫柱) 미래에셋자산운용사장

이근경(李根京) 재정경제부 차관보

이원기(李元基) 리젠트자산운용 사장(한국CFA협회장)

장시영(張時榮) LG투신운용 사장

최운열(崔運烈) 한국증권연구원장(서강대교수)·사회

<가나다순>》

▽사회〓두자릿수 성장률, 낮은 물가상승률 등 거시 경제지표는 좋아 보이지만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금리도 오르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모습입니다. 왜 시장이 이렇게 불안하다고 보시는지요.

▽장시영 LG투신운용 사장〓금리도 그리 높지 않고 환율도 안정적입니다. 그러나 단기 부동자금이 200조원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1000포인트를 넘어섰던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시장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젭니다. 지난해 64조원이 투입된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이 올해는 얼마나 투입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부도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시장불안은 정부가 솔직히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비롯됐습니다.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부실 규모가 100조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부실이 더 발생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수치를 알 수 없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빼낸 돈이 단기 부동자금으로 떠도는 겁니다. 더욱이 시장은 금융기관의 부실이 추가로 드러날 것이라는데 대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미 특정 그룹 채권의 경우 매매가 안되지만 아무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원기 리젠트자산운용 사장〓정책 불확실성도 문제지만 현재 주가하락은 유가와 국제금리가 오르고 원화절상에 따른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 임금상승 압력 등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서 미리 반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시에서 자금의 수요 공급간 균형이 완전히 깨진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IMF 직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70조원이었지만 지난해 거래소 350조원, 코스닥 100조원, 장외시장 투자 등 시장규모가 500조원까지 늘었습니다. 이런데도 시장에서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할 주식 장기수요를 늘리려는 정책은 없었다는게 문제입니다.

▽이근경 재경부 차관보〓시장불안은 심리적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 IMF때 한번 놀란 경험과 개혁이 어려운 것이라는 불안감이 부른 과잉경계가 한국식 집단행동과 맞물려 상황을 필요이상으로 악화시켰습니다. 현재로선 충분하다고 보지만 6월말까지 금융기관의 부실에 대한 실사를 마친 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구체적인 실행여부가 관건인 만큼 정부가 하나씩 행동으로 보여주겠습니다.

▽사회〓이차관보께서는 정확히 실체를 파악해 공개하겠다고 하는데 시장은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경부나 금감위가 은행합병이나 공적자금 투입, 기업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부처간 동일사안을 놓고 정책혼선을 보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이는데 발표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차관보〓시장은 정부가 정말로 공적자금을 그 정도 투입하겠느냐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고 봅니다. 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이 들어가기 전에 금융기관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공적자금부터 먼저 내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사회〓증시로 포커스를 돌려보지요. 경제상황으로 보면 주가가 떨어질 이유가 없는데도 증시는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증시침체가 일시적인 조정인지 구조적인 문제인지 토론해 보죠.

▽이사장〓외국인 투자비중이 시가총액으로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증시가 해외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게 됐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4분의1 정도만 빠져나가도 시장은 큰 타격을 입는다는 겁니다. 외국인이 우량주 중심으로 주식을 추가 매도할 가능성에 증권가는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조짐을 무역수지 흑자폭을 유지하기 위해 용인할 것인지, 환율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인지에 대한 정부입장은 무엇인지요.

▽이차관보〓외환수급상 중장기적으로 공급우위라 환율은 떨어질 것입니다. 경상수지 흑자에다 외국인 투자도 활발했습니다. 중장기로 보면 최근 환율상승은 일시적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문제는 환율이 계속 오르면 외국자본이 안 들어올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올 4월 외국인 투자가 주춤했지만 5월 들어 4000억원이 들어왔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환율과 경제 기초체력에서 볼 때 한국만큼 매력적인 시장은 없다고 봅니다.

▽사회〓채권 수요자인 투신사가 부실에 빠져 수요가 죽어있습니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경영진이 교체되면 멈췄던 채권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5대그룹 회사채 보유한도가 폐지돼 금리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성장률이 8∼9%인데 한자릿수 금리를 고집하는 것도 문제라고 붑니다.

▽박사장〓외국인들이 증시를 떠나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주에 집중되긴 했지만 5월에만 5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달러가치 기준에서 지난 10년간 한미 양국 주식시장을 보면 한국은 35% 하락했고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5배 올랐습니다. 지수는 비슷하지만 원화 평가절하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외국인 관점에서 한국은 성장가능성이 큰 매력적인 시장인 만큼 이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지요. 국내요인중에선 투신권 문제가 최대 불안요인입니다. 최근 투신권을 이탈한 자금 100조원이 은행으로 넘어가 은행의 단기예금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경제 실핏줄인 투신사로 자금흐름을 돌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부실이 추가발생해도 규모가 크지 않다는 확신이 먼저 생겨나야 합니다.

▽장사장〓시중자금이 투신권을 빠져나가 채권과 주식 매수력이 크게 약화됐습니다. 기관투자가 역할이 그만큼 축소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투신사 자금이탈은 구조조정이 지연됐기 때문인데 신뢰회복만이 해법입니다. 은행은 돈이 몰려들어도 주식을 사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합병이 될지 자신의 운명을 모르기 때문에 자금운용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차관보〓돈이 투신권을 떠나 은행으로 몰리는 것은 투신권 부실에 따른 수익률 감소를 우려한 것과 향후 금리상승 가능성 때문입니다. 은행에 단기자금이 많다는 것은 기회만 주어지만 시장에 진입할 대기성 자금이 풍부하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사장〓금융권의 3대 궁금증을 정부가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금융기관과 재벌의 구조조정을 시장의 판단에 맡길 것인지, 정부가 복안대로 추진할 것인지 엇갈려 시장 참여자들이 혼돈에 빠져있습니다.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할지 회생시킬지도 문제입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는지 아니면 문제를 유보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장사장〓금융은 정부가 장악하고 있지만 재벌문제는 다릅니다. 왜 금융기관이 산업의 부실을 떠안아야 합니까. 정부의 부실기업 처리원칙이 뭔지를 밝혀야 합니다. 결국 문제해결은 ‘보이는 손’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차관보〓내년부터는 재벌 부실로 인한 공적자금 투입은 없습니다. 공적자금 투입은 예금 대지급을 위한 것입니다. 예금 부분보장제가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부실한 금융기관은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제도 시행전에 금융기관이 충실히 대비해야 합니다.

▽사회〓기업이 증자를 하면서 ‘자기자본비용’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주주의 돈은 공짜가 아닙니다. 은행 차입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주주 돈을 받으면 최소한의 이익을 낸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차관보〓투신사 펀드는 주식 채권만 거래하지 말고 기업도 사고 팔아야 한다고 봅니다. 한보철강은 네덜란드의 ‘네이버스 펀드’가 투자자를 모으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경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다수의 주주가 참여하는 펀드가 주가가 폭락한 부실기업을 사들여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기업 소유-지배구조라고 봅니다. 인수합병(M&A) 활성화가 관건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사장〓투신사에서 빠져나간 돈이 은행권에서 돌아올 때까지 공백기간을 메우기 위해 개방형 뮤추얼펀드 허용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합니다.

▽박사장〓기업구조조정이 신속히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주식을 장기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금융산업 2차 구조조정을 시장을 중심으로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이번 만큼은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시장에 맡기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은행권은 합병해 놓고도 점포하나 줄이지 못했습니다.

▽이차관보〓IMF를 거치면서 은행에서 돈빌리는 차입경영(debt financing)의 문제점이 인식됐습니다. 결국 대안은 주주중심 경영(equity financing)입니다. 또 내년부터 예금부분보장제가 도입되면 금융인이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리스사는 2개만 남기고 모두 청산하거나 채무를 재조정시켰습니다. 모두 440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개방형 뮤추얼펀드의 도입은 많은 연구검토 끝에 결정돼야 할 문제입니다.

▽이사장〓부실의 전염화가 문제입니다. 재벌기업이 부실해지면 계열사가 다 뒤집어씁니다. 결국 채권은행이 부실을 책임지게 되고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정부 재정도 바닥날 수 있습니다.

▽이차관보〓적대적 M&A의 전면허용은 현재 검토중입니다. 그러나 주식 유통물량이 많지 않고 전문 펀드도 조성돼 있지 않으며 노동계도 M&A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부실경영을 할 경우 적대적 M&A를 통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경영해야 합니다.

<정리〓최영해·김승련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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