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안 어디까지?]정부 신속대응 기대半 걱정半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59분


지난주 홍콩 그랜드하야트호텔에서 열린 국민은행 기업설명회(IR).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참가한 이날 행사에서 국민은행 IR관계자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쏟아내는 질문 공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2차 금융구조조정으로 부실은행을 떠맡아야 되는 것 아니냐.”(미국계 투자펀드)

“한국 정부가 발표한 대로 투신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 같은가.”(유럽계 증권사)

이날 참석한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주식은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고 인정하면서 금융구조조정에 따른 시장의 불안감과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펀더멘털은 좋은데…〓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은 최근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실물경제지표는 견고한데 주식가치는 매우 낮은, 즉 매력적인 시장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았다는 인식이다.

지난주 홍콩에서 열린 인베스터포럼에 참석했던 유럽계의 크레디리요네증권 이상엽(李相燁)부장도 “한국의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에 변함이 없었으며 다만 지금 진행중인 금융 구조조정과정에서 생겨나는 진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정부가 투신구조조정과 은행합병 등에 대한 정책방향이 일관성이 없이 쉽게 뒤바뀌기 때문에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또 투신 등 제2금융권에서 발생한 손실을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에 떠넘기는 것도 우려하고 있다.

ING베어링의 빌 헌세이커 이사는 “한국 금융시장의 불안은 한마디로 한투 대투의 지원문제, 뮤추얼펀드 만기 도래 등 금융시장의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서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그동안 저금리체제로 감추어진 기업부실이 최근 들어서 서서히 다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계 증권사의 한 조사담당 이사는 “지금 전세계 경제는 경기하향세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기업 부실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금융권은 다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며 “국내 기업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부의 컨트롤 범위 밖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은 조만간 현대문제가 한국경제불안의 핵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점치면서 현대측의 계열분리, 적자부문 정리, 몸집 불리기 제동 등의 가시적인 조치가 나와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는 상태.

▽아직은 관망세〓최근 국가신용도의 척도로 볼 수 있는 외평채 가산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최근 무디스 S&P 등의 잇따른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주시할 대목은 과연 자금을 빼내가고 있느냐는 점. 외환위기를 불러온 결정적인 요인이 외국인 자금의 대거 이탈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3월까지 급증하던 외국인주식자금이 4월 들어 1억2000만달러, 5월 22일 현재 3억달러로 크게 줄어든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은행 이상광(李相炚)외환수급팀장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한 자금이 현재 나가지 않고 재투자를 위해 국내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까지는 금융구조조정만 제대로 되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오겠다는 태세다”고 말했다.

크레디리요네증권의 이상엽부장은 “외국인이 최근 주식을 팔았던 것은 미국의 금리 인상, 달러 강세, 추가적 금리 인상 우려 등에 따라 아시아 통화가 약세로 돌아 아시아 투자비중을 축소한 것”이라며 “외국인이 주식을 팔고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하기에 달렸다〓지난주까지 부정적인 시각을 잇따라 표명했던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한투 대투의 공적자금 투입 일정과 정부의 강력한 금융시장 안정책이 발표된 이후 긍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24일 ‘한국보고서’에서 “금융불안의 주원인인 투신사 구조조정이 3∼6개월에 걸쳐 예정대로 추진되면서 시스템리스크가 해소되고 은행합병도 점차 가시화되면서 6월부터 금융시장이 안정돼 주가도 상승세로 반전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계 증권사의 한 관계자도 “최근 며칠 사이 정부의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느낌이며 이제야 문제 해결의 출발선 상에 도착한 셈이다”며 “우선 금융시스템을 건전하게 해놓고 이를 통해 현대문제 등 기업 잠재 부실을 빨리 떨어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ING베어링의 빌 헌세이커 이사는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은 모두 내놓았다”며 “제시된 정책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이철용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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