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두원/큰 治積 욕심이 무리 낳는다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13분


가깝게 지내던 주한 외교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을 비롯하여 한국에 관심이 있는 많은 외국인들은 어째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국내와 국외에서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의아해 한다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김대통령이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화에 기여하였으며 집권 이후에는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남북한간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라고 평가하는데 반해 국내에서는 그런 평가를 못 받는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국내에서 김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앞에서 소개한 외국언론의 평가를 거의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이들은 김대통령이 말로는 민주화를 외치면서 사실은 독선적이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실을 방조하고 있고, 남북관계 역시 자신의 재임 중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비판이 일부 소수의 불만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볼 때 이들을 소수라고 매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의 일부는 다분히 감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즉 ‘DJ가 싫으니 DJ정책은 다 싫다’는 식으로 김대통령에 대하여 알레르기성 반감을 가진 계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이런 비판은 맹목적인 칭송 못지 않게 국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이런 비난에 대하여 다분히 섭섭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대통령 자신이 왜 국내에서 자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김대통령이 가장 큰 치적으로 자평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를 살펴보자. 사실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은 객관적으로 봐서 만점은 못되지만 70점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경제위기는 아직 극복된 것이 아니며 단지 회복되고 있는 과정에 불과하다. 더욱이 대우사태와 제2금융권의 부실 등 여전히 많은 불씨가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직 경제위기가 극복됐다는 평가를 기대해선 안될 것이다. 또한 설사 수십조원을 더 써서 금융권의 부실을 모두 제거한다고 해도 과거의 관행이 변하지 않으면 경제위기는 언제라도 다시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뿐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은 김대통령의 경력으로 미뤄 볼 때 현 정권이 도덕적으로 과거 정권들과는 다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집권 이후 터져 나온 각종 비리와 스캔들로 인하여 이런 국민의 희망은 퇴색됐으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김대통령은 행운아다. 취임 당시에는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다. 경제는 파탄 나 있었으며 정부는 각종 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한미간에는 묘한 불신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고 남북한 관계는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취임 초의 이런 상황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상황은 여러 면에서 대폭 개선되었으며 또 예기치 못한 큰 악재가 없는 한 김대통령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개선을 이루고 퇴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는 지나친 욕심은 자제해야 한다. 특히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김대통령은 이제 어느 정도 경제위기는 극복됐으니 고성장과 저물가, 그리고 국제수지 흑자의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하는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는 경제위기 재발을 방지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만족해야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차기 정권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에만 주력한다면 오히려 의외의 성과와 평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경제와 정치, 그리고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역사에 남을 대업을 이루려고 무리하다가는 자칫 역사에 남을 대오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두원(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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