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재벌구조 '젊은 새바람' 부나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3분


“재벌체제는 10년 또는 15년이내 없어진다”는 SK㈜ 최태원(崔泰源·40)회장의 16일 발언이 재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회장중심의 재벌이 해체돼 이른바 세습적 황제경영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지배구조 개혁의 예고성 발언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발언의 내용’도 그렇지만 ‘발언의 주체’가 재벌 총수라서 더 주목을 끌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전경련이 반발했겠지만 재계와 정부는 최회장의 발언이 “신선하다” “젊은 총수답다”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 유한수(兪翰樹)전무는 “재벌이 강제적으로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면 곤란하지만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평가했다.

공정거래위측 역시 “재벌의 장래를 잘 내다 본 것 같다”며 “재벌총수가 직접 그같은 말을 했다는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는 반응이다. 개혁을 타의에 떠밀려 하는 것보다 앞선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 총수들이 스스로 할 때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부측 판단.

재계에서는 최회장의 발언이 여타 재벌그룹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당장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의 장남 이재용(李在鎔)씨, 제일제당 이재현(李在賢) 부회장, 이웅렬(李雄烈) 코오롱그룹 회장 등 소위 디지털세대 젊은 총수 또는 총수후보들이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30대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인 이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경영인으로서 수업을 받았으며 디지털 경제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경험과 사고의 기반 위에서 이들은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몸집을 불려서 승부를 내는 재벌체제로는 사람과 아이디어가 자산인 디지털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이날 KAIST테크노경영대학원 강연회와 기자간담회에서 최회장이 “아버지가 수천억원을 물려줘도 디지털경제에서는 지식이 없으면 있는 자산도 지킬 수 없다”고 한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386세대 총수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또 경영자로서도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최회장은 SK그룹의 변신을 전면에서 주도하면서 “경영에 실패하면 물러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드림라인설립 택배업진출 영상콘텐츠 사업진출 등 그룹의 인터넷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이재현 부회장은 “디지털시대의 재계리더”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젊은 총수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2세들의 무리한 경영으로 IMF때 문을 닫은 재벌들의 예를 명심해야 한다”며 의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SK그룹의 한 임원은 “인터넷을 잘 안다고 해서 경영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할 수 없고 황제경영 극복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젊은 총수들의 검증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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