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영화/'하나의 선택']흑백남녀 불륜 그려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38분


작고 조용한 영화인 ‘하나의 선택’은 1970, 80년대 정치와 사회에 대해 격렬하게 발언하다가 1990년대 들어 미학에 대한 탐색으로 방향을 튼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잠시 쉬어가며 만든 소품 같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사상범으로 투옥된 남편을 기다리며 낮에는 가정부로 일하고 밤에는 의대에 다니는 아프리카 여인 샨두레이(탠디 뉴튼 분)와 그가 가정부로 취직한 집의 주인이자 영국인 피아니스트 킨스키(데이비드 튤리스)가 불륜에 빠지는 과정을 그렸다.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베르톨루치 감독은 무심한 척 딴청을 피우면서도 은밀하게 서로를 훔쳐보고 신경 쓰는 두 사람의 미묘한 마음을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악만으로도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청소를 하는 샨두레이의 어깨와 겨드랑이를 샅샅이 훑는 카메라의 관능적인 움직임은 킨스키의 욕망어린 시선을 대신한다. 학교에 가던 샨두레이가 슬쩍 2층의 킨스키를 올려다볼 때 고속 촬영한 슬로 모션 장면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이끌림의 아련한 감정이 배어 있다. 두 사람의 혼돈과 불안, 격정은 번갈아 흘러나오는 모차르트 음악과 아프리카 민속음악에 실려 관객에게 전달된다.

글로 치자면 산문보다 시에 더 가까운 영화다. 캐릭터보다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세세한 결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권력의 우열을 연상시키는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집주인과 가정부라는 설정은 영화에 깊숙이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원제 ‘Besieged’는 ‘포위된’ 혹은 ‘사로잡힌’이라는 뜻. 18세 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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