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대토론]황태연-함성득/국가원로자문회의 부활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29분


《자민련 이한동총재가 최근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을 차례로 만난 뒤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부활시키자고 제언하면서 정계 일각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이총재는 전직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을 맡아 집권 경험을 살려 국가발전을 위한 조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폈다.

국가원로자문회의 부활을 찬성하는 학자들은 전직 대통령들이 국민 앞에 서로 반목하는 모습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남북정상회담 등 국가 대사에 관해 현직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반면에 반대론을 펴는 학자들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퇴임 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만들었다가 사문화된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일축한다.》

▼찬성▼

최근 이한동 자민련총재가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부활하자고 제언한 것을 듣고 적잖은 사람들이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이 제언을 두고 그 정치적 배경과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일이 나라에 좋은 일이라면 이런 제언으로 이총재가 나름의 이익을 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은 이 자문기구의 설치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두세 차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민족 대사를 앞두고 있다. 이 중차대한 국정과제를 성공리에 완수하기 위해서는 네 분의 전직 대통령들이 이 자문회의를 통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직 대통령의 자문에 수시로 응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다양한 지역 출신인 전직 대통령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것은 국민화합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현직 대통령간 또는 전직 대통령간의 사이가 늘 안 좋았던 불미스러운 전통을 이 기구를 통해 해소하는 것도 뜻 있는 일일 것이다.

총선민의에 따라 대화정국이 절실해진 마당에 국정자문회의를 설치하면 대화정국의 확장과 강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상황에서 다방면의 열린 의사소통과 언로(言路) 개척은 정치안정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간의 공식적 가교로서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분간의 만남도 원만히 이루어진 현시점에서 두 분이 이 기구를 통해 협력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민주주의자들에게 큰 위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헌법상의 이 기구는 과거 전두환 전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명문화한 것이라는 의혹이 있어 민주화 세력은 이 기구의 신설을 꺼림칙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그 자체로서 정통성을 갖춘 ‘6월 항쟁’의 쟁취물이라는 점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걸림돌은 전직 대통령 당사자들이 중층적(重層的) 가해자 피해자 관계를 맺고 있어 합석(合席)을 꺼리기 때문에 이 분들이 이 기구의 설치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영삼 전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의 관계가 염려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전대통령한테 사형선고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도 전두환 전대통령과 자주 회동하는 것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전두환 전대통령의 악연에 비하면 김영삼 전대통령과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의 그것은 덜한 것이다. 때마침 한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과거의 ‘한’은 다 과거로 보내기로 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전직 대통령들이 나라를 위해 마음만 바꿔 가지면 합석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헌법 90조는 ‘국정의 주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헌법조항을 사문화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명문상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들이 현직 대통령의 권력을 제약할 염려도 없다.

그런데 이 기구의 설치를 위해서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전향적인 생각이 관건이다. 헌법은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은 직전 대통령이 된다. 다만 직전 대통령이 없을 때에는 대통령이 지명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직전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 기구의 출범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의장이 없는 자문회의는 명문상 존립할 수 없고 또 직전 대통령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의장을 대통령이 지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은 상세한 사항을 법률로 위임하고 있다. 따라서 기구 출범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시의적절하게 입법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국론을 모아 이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설치하여 잘 운영한다면 국민과 민족의 여론을 안정시키고 수렴하는 획기적인 역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황태연<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반대▼

그동안 갈등이 많았던 전현직 대통령들이 자주 만나 국정전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국가의 중요 과제를 앞두고 전직 대통령이 집권경험을 기초로 국가경영에 대한 식견과 안목을 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전직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부활해 활성화하자고 제기한 것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원로자문회의는 5공화국 당시 신설된 국정자문회의가 6공화국 출범 직후인 88년 확대 개편된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이 기구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의 어려운 국정운영에 자문을 해주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국민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조직과 기능을 제도화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전두환 전대통령은 이 기구의 의장직을 사퇴했고 이 기구의 헌법규정은 이미 사문화됐다. 따라서 국민의 반대에 부닥쳐 실현되지 못한 국가원로자문회의를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또 다시 부활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국가원로자문회의법에 의하면 의장은 국회의장, 원로위원은 국무위원에 준하는 여비 지급 등의 예우와 장관급 사무총장과 사무처 직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현 정부가 조직축소를 통한 작고 효율성 있는 정부개혁을 표방하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의 만남을 제도적으로 주선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들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가로부터 연금을 포함한 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국가원로자문회의를 활성화해 김 전대통령으로 하여금 의장직을 맡아 국정에 자문을 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현직 대통령이 정책자문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문제를 초래하는 전직 대통령을 제도적 틀 안에 두어 자신의 통치권 강화에 이용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차별화 또는 보복으로 인한 악연 때문에 대면을 하게 되면 냉랭하게 굳어지는 것이 현재 우리 전현직 대통령들 사이의 분위기이다. 이들이 국가원로자문회의를 통한 제도적 틀 안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특정 정책사안을 놓고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면 커다란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직 대통령이 국가중요 사안에 대해 전직 대통령의 조언을 듣고 싶으면 가끔 비공식적으로 만나 그들의 지혜를 얻으면 될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문제에 대해 자주 조언을 듣는 미국의 경우도 전직 대통령과의 만남을 위한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현직 대통령의 존경심과 전직 대통령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잘 조화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많이 연출되고 있다. 실례로 99년 2월 후세인 요르단 국왕 장례식에 클린턴 대통령과 포드 카터 부시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이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해 요르단에 가면서 중동평화협상, 코소보사태 등 국제현안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한때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정치적 경쟁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국가 이익을 위해 국정을 논했던 것이다.

생존해 있는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정국 혼란 속에서 운 좋게, 군사 쿠데타로, 야당분열에 의해, 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따라서 그들은 한때 대통령직에 있었던 것을 국민에게 감사해야 하며 나아가 그들의 중요한 국정운영 경험이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전직 대통령의 역할은 국정에 관여하는 것보다는 평범한 자연인으로 돌아가 사회의 ‘어둡고 낮은 곳’에 대한 봉사를 통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전직 대통령들과 정치적 흥정이나 논쟁을 할 여유도 실익도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 우리 모두가 전직 대통령들이 조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그들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거두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함성득<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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