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Arts]바그너 오페라 '반지'…그 식지않는 열기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00분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반지’는 1869년에 뮌헨에서 초연된 이후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나치 독일이 이 오페라를 이용한 것도 공격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여러 오페라단에 의해 거듭 공연되고 있다.

올해에도 현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반지’를 공연하고 있고, 7월에는 독일에서 열리는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반지’가 공연될 예정이다.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반지’가 공연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이번이 여덟 번째이다.

또한 ‘반지’는 지난 시즌에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 의해서도 공연되었다. 시애틀 오페라단은 올 8월과 내년에 이 오페라를 공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 국립 오페라단 역시 ‘반지’를 다시 공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869년 뮌헨서 초연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발레리 게르기에프가 키로프 극장에서 ‘반지’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게르기에프는 이 공연을 가지고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중국 등을 순회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이렇게 야심적인 계획을 세운 적은 없었다.

지금도 이 무수한 공연들이 ‘청중이 없어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해도 별 무리가 없다. ‘반지’의 공연 티켓은 대개 공연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팔려나가곤 한다. 이 작품이 이처럼 청중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가장 간단한 이유로는 이 작품이 호머나 톨킨의 작품과 비견되는 감동적인 모험 이야기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영웅, 거인과 난쟁이, 날개 달린 말과 용, 사랑과 증오, 살인, 마법, 미스터리가 모두 등장한다. 게다가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높고 험한 바위산, 장엄한 동굴, 원시림, 불의 장벽, 도도하고 거대한 강 등이다.

한편 이보다 조금 수준이 높은 이유로는 이 작품이 일종의 세계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서 이용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노른스는 보탄이 세계수의 가지를 찢어 힘의 창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청중에게 전한다. 나무는 이 상처로 인해 시들어 죽어버리고, 나무의 그늘 밑에서 부글거리던 지혜의 강은 말라버린다. 그러나 보탄은 계속 힘을 추구해서 세계를 현명하게 다스리려고 노력한다. 나중에 지그프리트가 부르는 노래는 인간이 원소를 다루는 법을 터득해서 무기를 만들게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반지’는 또한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바그너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1848년에 처음으로 떠올렸는데, 그 해에 유럽은 혁명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일리아드 맞먹는 대서사극

바그너는 1849년 4월에 발표한 시 ‘혁명’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모든 잘못된 것들을 파괴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 물질이 영혼을 지배하는 것을 파괴할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5월에 혁명가 바그너는 체포영장을 피해 드레스덴으로 도망쳤다. 이어 그는 스위스에서 12년간이나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반지’를 작곡하기 시작했을 때 바그너는 35세의 젊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는 많은 고통을 겪은 61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바그너는 북유럽의 신화와 서사시, 모험담, 아테네의 비극, 중세의 기사 이야기, 동화 등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신화적’인 일화들은 바그너가 창작한 것이거나, 그가 여러 가지 소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것들이다. 예를 들어, 가장 강한 사람만이 뽑을 수 있는 세계수 속의 칼은 아서왕의 칼과 사촌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중세 신화 전설 엮어

바그너는 이 작품에서 대담하고 기발한 무대장치보다는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청중이 무대 디자이너와 연출가의 손길을 적게 의식할수록 공연의 성공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현대적 장치와 연출을 동원한 ‘반지’ 공연들 가운데에서 전통적인 ‘반지’ 공연 역시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http://www.nytimes.com/yr/mo/day/artleisure/wagner-oper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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