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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홍찬식/조기유학과 '프린스턴 김'

입력 2000-03-30 19:44업데이트 2009-09-2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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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상반기중에 초중고교생의 해외유학을 전면 허용할 것이라는 보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기유학은 시작된 지 꽤 된다. 편법을 동원한 것이긴 하지만 상당수가 벌써 조기유학을 떠났으며 지금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기유학은 교육환경을 외국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모험’이다. 철모르는 아이들을 외국에 보낼 때 발생하는 문제가 어찌 한두 가지겠는가. 낯선 땅에 아이들만 남겨 둔다면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까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 현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일시적으로 둘로 갈라지는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조기유학은 중산층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웬만큼 사는 가정이라도 수입의 대부분을 유학비로 지출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이들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다.

▼현대판 孟母▼

처음부터 유학을 보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또다른 불평등이고 외화유출 등 조기유학이 불러올 부작용도 반드시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들의 교육열만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맹자를 위해 3번 이사를 했다는 맹모(孟母)의 현대판이자, 어쩌면 그것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대단한 한국의 어머니, 아버지들이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몸을 던지는 부모들이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조기유학을 택하는 큰 이유는 한국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다. 학부모들이 세계화시대에 외국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 점에서 조기유학은 과외의 새로운 형태다.

과외는 학교교육의 불신에서 시작된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만 가르친다면 왜 비싼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키겠느냐고 학부모들은 반문한다. 하지만 미국의 교육주간지 ‘에듀케이션 위크’의 최근 보도는 이 문제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국이민자들의 교육열과 과외붐을 소개한 내용이다. 한국계 자녀들은 대부분 학교수업 후 학원과 개인교사를 찾아가 과외를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학부모들에게 미국의 학교교육은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 학교는 입시스트레스로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들지도, 암기식 주입식 교육으로 창의력을 죽이지도 않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학교 체제에서 한국 교민들은 왜 과외를 시키는 걸까. 미국에까지 가서 과외를 시키는 것을 보면 한국의 학교가 제 역할을 한다면 과외는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코리아타운의 과외열풍▼

과외 현상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유교적 전통에서 자기수양을 하고 입신과 출세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배움이었다. 학교가 됐든, 과외가 됐든 학부모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거의 강박관념 수준에 이른 게 문제이긴 해도 그것이 우리 교육열의 본질이다. 어느 교민은 아이가 성장해 미국 동부의 명문대 아이비리그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아이 이름을 ‘프린스턴 김’으로 짓기도 했다고 ‘에듀케이션 위크’지는 꼬집고 있다. 이 정도라면 한국인에게 교육은 종교에 가깝다.

우리 교육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기유학 붐은 우리 교육의 위기상황을 보여주는 또다른 얼굴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교육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고 누구나 교육전문가임을 자처해온 나라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역대 정권이 교육정책을 펴면서 과외를 잡는데만 혈안이 되어온 점이다. 우리는 과외근절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지난 수십년간 입시제도를 그토록 여러번 바꾼 것도 결국 과외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런 ‘과외와의 전쟁’에서 결과는 매번 과외쪽의 ‘한판승’이었다. 김대중 정부도 정권을 잡자마자 과외근절에 나섰으나 과외는 더 늘고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과외를 없애겠다는 생각이 ‘환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국가의 미래를 이끌 인재 육성방안을 다시 생각해야될 때가 아닌가. 정부가 학부모들의 ‘못말리는’ 교육열을 규제 일변도로 억누르려 하지말고 이를 긍정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찾아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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