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포천 남명구목사와 봉사자

  • 입력 2000년 3월 17일 19시 09분


그들은 한 손에는 비누를,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의 몸을 씻어 준다. 겨드랑이며 허벅지며 노인들의 거칠어진 몸 구석구석에 비누를 칠하고 빨간 때수건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노라면 어느덧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순간 이들은 갈 곳 없는 노인들과 ‘한가족’이 된다.

경기 포천군에서 6년째 노인들에게 무료 목욕 봉사를 하고 있는 남명구(南明九·40)목사와 자원봉사자들. 그들은 모두 자식이 부모를 대하는 심정으로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는 ‘사랑의 때밀이’들이다.

▼ 장애인-노인 목욕 봉사 ▼

90년 경기 포천군 군내면에 장애인 재활을 위한 ‘남사랑 선교 재활원’을 열고 봉사 활동을 시작한 남목사가 무의탁노인 목욕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5년.

남목사와 친분이 있는 한 장애인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목욕 한번 하기가 정말 힘들다. 남목사가 좀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자기 몸 씻을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남목사였기에 듣기에도 생소한 목욕 봉사에 선뜻 나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애인 친구는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몸을 씻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간곡하게 설명했다. 마음 약한 남목사는 결국 목욕 봉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정말 자신 없었어요. 지금 목욕 봉사가 이렇게 제자리를 잡은 것은 모두 옆에서 도와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남목사가 목욕 봉사 의지를 밝히자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포천군 해병대 전우회 사람들이 찾아와 며칠간 뚝딱거리더니 미니버스에 실을 수 있는 욕조를 만들어냈다. 포천군보건소에서는 “노인들 목욕은 워낙 섬세한 일이라 간호인이 필요하다”며 간호사 1명을 지원했다. 지역 적십자 봉사단원들도 자원봉사에 나섰고 창수면파출소장 부인, 포천군 기획실장 부인 등 내로라하는 ‘유지’들도 소문을 듣고 봉사를 자청했다. 현재 남목사를 돕는 봉사자는 모두 30명.

“뇌졸중이나 노환으로 운신이 어려운 노인들은 몸을 씻어 주면 정말 흐뭇해하십니다. 목욕시켜 드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이구 시원하다’ 한마디만 들으면 힘들었던 기억이 싹 사라지죠.”

▼ 간호사-주부등 참여 잇달아 ▼

이제 노인들은 남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을 모두 자기 자식처럼 허물없이 대한다.

지난해 남목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무의탁노인 장모할아버지(82)와 최모할머니(78) 부부를 만난 것. 처음 만났을 때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한쪽 팔과 다리를 사용하지 못했다. 방안에는 악취가 진동했고 과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몸을 씻기 시작하자 이 노부부는 너무 행복에 겨워했다. 말도 잘 못하던 할아버지가 남목사에게 천천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때때로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나를 먼저 씻어 달라”며 투정을 부리는 등 남목사와 자원봉사자를 자식처럼 대했다.

▼ "부모 모시듯 즐거워요" ▼

남목사는 이 갈 곳 없는 노부부를 ‘제대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10월 포천군 군내면에 ‘효사랑의 집’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현재 10명의 무의탁노인들이 기거하고 있다. 이 집을 만든 계기가 된 장씨할아버지는 어느덧 이곳에서 ‘장회장’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가 95년 미니버스에 욕조를 처음 실었을 때 모두 ‘한국 최초의 이동 목욕 차량’이라고 자랑스러워했죠. 자원봉사자 모두 힘들다는 내색 하나 없이 내 부모 모시듯 즐겁게 살아 왔습니다.”

한 손에는 때수건, 다른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남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오늘도 노인들의 몸을 씻어 준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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