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N세대의 '사이버 정치학'

  • 입력 2000년 2월 18일 12시 12분


요즘 정치권을 보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뻔뻔함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는데, 국민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법에 어긋난다" "불법이다" 등 이런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법은 무엇입니까? 시민들의 안전과 주권을 위해 만들어진 규범 아닙니까?

시민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우리의 대표인 당신들을 얼마나 불신하면 낙선운동을 펼치겠습니까?

시민들의 대표라는 거짓된 탈을 쓴 어르신들 당신들의 그 뻔뻔함은 어디까지입니까?('고3'이라고 밝힌 전병호군 agape31k@hanmail.net)

첨에 정말 기대도 컸다. 이제 울나라도 되는구나 하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기도 안 찼다. 오로지 민주당 입맛대로 되지 않았나. 난 한영애 이인제 이종찬 천용택이가 빠진 이유를 안좋은 머리 굴려가며 찾았다. 시민연대이기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내 돌머리로는 도저히 못찾겠다. 즉각 시민연대는 이회창 한영애 이인제 천용택이를 반대 명단에 올려라. 이건 여러분 운동의 정당성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freebird)

"무슨 나라가 이러나. 걱정이다."

총선시민연대에 의해 '명예로운 정계은퇴'를 강요받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측근들로부터 '낙천 대상'에 포함됐다는 말을 전해듣고 이렇게 탄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현욱 자민련 총장은 "이(시민단체의 발표)는 법을 떠난 민중선동적 행태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이며, 이 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만든 근대화 세력과 이 강토를 지켜온 보수세력의 숨통을 끊으려는 급진 진보세력의 음해이자 공작"이라며…. 그러나 웃기지 마라. 너희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세력이며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구악에 다름아니다. 이제 새로운 시민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그런 역사적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너희 시대는 이제 끝났다.

'무슨 나라가 이러나'에서, 이제 나라꼴이 되어가는 것이다.(Zeroguy·zeroguy_18@hanmail.net)

다양하다. 뜨겁다. 치고받는 '글'의 난타전이 여간 아니다.

때로는 도를 넘어 지독한 인신 공격과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난무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익명성은 자기 신분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숨길 수 있다는 그 싸움의 약이자 독이다. 수많은 갑남을녀들이 이 글싸움에 끼어들어 판을 넓히고 힘을 키운다. 이 힘은 곧 '여론'이다. 개중에는 화해를 도모하는 이도 있고, 되레 싸움을 부추기는 이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주먹다짐은 없다. 멱살잡이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단어와 문장, 그리고 그것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통해 논박하고, 논박당한다. 그 단어와 문장은 대개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고, 따라서 투박하고 생경하다.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후다닥 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개중에는 논박의 수준이 유치할 때도 있고, 비논리적일 때도 있다. 때로는 쓰레기에 불과한 욕설들의 나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생산적인 합의를 이끌어낸다.

인터넷이 한국의 정치 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낙천·낙선 운동을 펼치는 여러 시민단체들에 힘을 더해준 것은 물론, 그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여론을 즉각 반영해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가 개설한 웹사이트(www.ngokorea.org)는 그 중에서도 지각 변동의 기미를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네티즌들이 이곳을 찾아 낙천 대상자 명단을 확인하고, 게시판에 의견을 올리고, 다른 네티즌들과 논쟁을 벌인다. 총선시민연대를 격려하는 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이를 비판하는 글도 적지 않다. 여당을 탓하는 이, 야당에 책임을 묻는 이, 정권의 독재를 성토하는 이등 네티즌들도 그 내용만큼이나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새천년 민주당의 보스 김대중은 국민회의 당명을 2년만에 버리며 신차 새민당을 뽑았다. 차를 사면 10년 정도는 타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대한의 국민된 도리라 할 수 있건만 통합민주당을 탄지 얼마 안돼 국민회의를 뽑더니 다시금 새민당이란 신차를 산다. (…) 불과 군사정권이 정치안정론을 내세우는 것을 비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야당할 때 말 다르고 여당할 때 말 다르니 이들의 하는 짓거리가 마치 낮엔 야당 밤엔 여당하던 유진산을 연상시킨다.

작금의 정형근 사태를 냉철히 한번 바라보자. 왜 하필이면 총선 전이라는 미묘한 시기에 긴급체포라는 형식의 강경한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가. 시간은 작년에도 있었고 재작년에도 있었다. 굳이 정형근의 고문관련문제 내지는 오익제관련문제를 꼬집고 싶었다면 재작년이나 작년에 거론하며 문제를 해결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형근이가 현정권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대여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되자 전라도당의 괴수 김대중은 정형근이 정부를 괴롭히는 것이 못마땅했던지 검찰을 이용해 다시금 정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검찰의 주구노릇을 언제까지 봐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정형근이 말대로 측은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尖兵(첨병)이라는 ID를 가진 사람의 글이다. 그 바로 밑에 가지치기 모양으로 달린 '답장'도 눈길을 끈다. 이민철이라는 사람이 쓴 반박문이다.

답답한 양반 여기 또 하나 있군요.

리플(리플라이·답장) 달기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국민에게 인기얻으려고 조직폭력배 일제단속하면 정치적 동기가 있는 거라서 잘못된 건가요? 그래서 경찰에게 반항하는 깡패는 민주투사겠네요.

둘러 말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말하세요. 김대중이 씹으니까 정형근이가 좋다고. 내 세계관은 위대한 지역감정이라고. 단순한 편견을 논리로 합리화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자기 편견이 편견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나는 김대중이가 무조건 싫다, 그래서 정형근이가 무조건 좋다고. 사이비종교 믿는 사람들 측은하기는 하지만 지가 지 인생 망치는 것이니까 별 상관 안 합니다마는 싫다는 정상인들한테 억지로 포교하고 다니는 것 보면 진짜 성질납니다. 그냥 편견 가진채로 혼자 그대로 사세요.

한겨레신문의 만평을 오독(誤讀)해 망신살이 뻗친 자민련의 이양희 의원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더없이 뜨거웠다. 인터넷의 대표적 패러디 사이트인 '딴지일보'(Ddanji.netsgo.com)에는 신랄하기 그지 없는 풍자 기사가 실렸다. '대한민국 국민'(i-ssaguri@hanmail.net)이라고 밝힌 네티즌도 '푸하하~!!! 자민련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허탈과 실망의 감정을 드러냈다.

정운영의 100분 토론을 두 차례에 걸쳐서 봤습니다. 그런데… 자민련 의원님들의 뜻이 너무나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찡그리고 사는 국민을 위해 자민련이 선뜻 나서서 국민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것 말입니다. 저 이 프로보고 진짜 실컷 웃었습니다. 너무 웃겨서 말이죠~!!!

푸하하~!!! 사오정인가 아님 텔레토비인가? 아냐아냐 둘 다 맞어~!!! 푸하하~!!!

정말이지 이번 총선때 집에서 잠이나 자려고 그랬는데 맘 바꾸었습니다. 왜냐구여 ~ ? 자민련의 "자"자도 들어가는 칸을 보면 X표 할려구여~!!! 정말이지 왜 그렇습니까~? 언제 음모론이 아니었을 때도 있습니까~? 조금만 불리하면 무슨 음모론이다, 여당 또는 야당 파괴 공작이다, 뭐다 해서 괜히 시사초점 다른 데로 돌리고, 그러다가는 국민들이 영영 시선 돌립니다. 지금도 위험수위지만여~!!! 제발 정신 좀 차리세여 ~ !!!!

총선시민연대 웹사이트만이 아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신문사의 웹사이트, 국회의원 지망자들의 홍보 사이트에도 어김없이 게시판이 있고, 여기에는 온갖 다양한 의견과 비판, 반(反)비판이 올라와 있다. 이처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어떤 내용의 의견이든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다는 것, 마치 직접 마주보고 말다툼하듯 즉각적으로 갑론을박할 수 있다는 것, 어떤 논쟁거리에 대한 찬반의 향배를 거의 실시간에 알 수 있다는 것 등이야말로 인터넷이라는 대화형, 혹은 쌍방향(Interactive) 매체가 지닌 미덕이다. 어떤 이의 글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나는 즉각 그 글 밑에 반박문을 올릴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치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뻗어가듯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고리를 만들고 변주되는 것이다.

이제 시민들은 더 이상 힘없는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이들은 이제 인터넷이라는 신매체의 힘을 빌려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됐다. 아무런 거름장치도 없이,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거대 언론사 없이도 자유롭게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의견이 다른 것은 무서운 전파력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도 일개 시민의 울분이나 비판이란 술자리의 일회성 안주에 불과했다. 파급력 또한 함께 모인 친구나 동료 몇 명에서 그쳤다. 인터넷은 이러한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내가 글을 인터넷 올리는 순간, 그 글은 내 손을 떠난다. 시간과 공간도 뛰어넘는다. 내 글을 한두 사람이 보고 말 수도 있지만,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내 글을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과거에도 시민의 힘, 특히 유권자의 힘은 무서웠다(혹은 무섭다고, 언론에 의해 알려져 왔다). 그러나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의견을 공론화할 수 있는 통로는 사실상 막혀 있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이 언제나 '시청자(독자) 만세!'를 외쳤지만 진정한 언로(言路)는 존재하지 않았다. '옴부즈맨 제도'라든가 '독자편지' 같은 지면은 실속보다 '형식'에 더 얽매여 있었다(지금도 그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특정 매체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을 터뜨렸다가는 '데스크'라는 게이트키퍼에 의해 삭제되거나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일방향 매체가 지닌 한계였다.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인터넷이 뭐야?' '이메일(E-mail)을 어떻게 쓰지?'라고 묻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팩스 번호보다 이메일 계정을 먼저 묻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돼 버렸다. 아직 TV나 오디오기기를 쓰듯 편안하게 이용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터넷이 몇몇 컴퓨터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은 사라진 것이다. '국내 인터넷 이용자 1천만명 돌파' '00 인터넷기업 회원 6백만명 돌파' 같은 주장이 다분히 과장된 것이기는 해도, 그만큼 인터넷이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이른바 'N세대'는 그 중에서도 인터넷이 낳은 신인류라 할 만하다. 여기에서 N은 '네트워크'의 첫 글자. 바꿔 말하면 '인터넷 세대'라는 뜻이다. 아무리 인터넷 대중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수준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특히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인터넷은 여전히 낯설고 부담스러운 존재다. 설령 그것을 이용한다고 해도 꼭 필요한 몇 가지 기능에 그치기 쉽다.

N세대로 묶이는 10~20대는 다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기술도, 낯선 도구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거실이나 자기 방에 놓인 여러 가전제품들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들은 TV를 켜고 끄듯 심상하게 인터넷에 접속한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삶의 한 부분인 것이다.

'디지털 경제'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시장 분석가 돈 탭스코트는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Growing up Digital)라는 새 책에서, 네트워크 환경에서 자란 '와이어드 세대'(Wired generation) 혹은 '디지털 세대'를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신세대는 정보 기술을 그들 자신의 일상적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1995년 실시된 10대들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 정도가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을 '멋진'(Cool) 일로 여겼으나 98년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88%가 인터넷, 특히 온라인 대화를 '멋진' 일로 생각하고 있다. 탭스코트는 'N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젊은이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열려 있으며 혁신적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 욕구와 강한 자기 의견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한다. 탭스코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어린이들이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현안들에서 강력한 권위를 갖게 됐다"며 이들이 사회와 기업으로 진출함에 따라 그 사회와 기업도 그만큼 더 개방적이고, 덜 위계적인 대신 더욱 협력적인 곳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탭스코트의 진단은 국내 사정에도 잘 들어맞는다. 인터넷을 통해 표현되는 N세대의 모습은 감정적이고, 개방적이며, 자기 표현 욕구가 매우 강하다. 총선시민연대의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이들 N세대의 참여는 단연 두드러진다. 웹사이트의 성격상 30대 이상의 참여가 높은 편이지만 10~20대의 열성도 그에 못지 않다. 기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상공간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이다.

지난해 말 '전자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등장한 '이마크러시'(www.emocracy.co.kr)를 보자. 인터넷 정치 마케팅업체임을 내세우는 이 사이트의 대표인 문의배씨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91학번이다. 기획팀이나 디자인팀, 기술지원팀 직원들은 95~98학번이다. 89학번인 정책팀의 김문규씨가 원로처럼 여겨질 정도다. "인터넷을 통해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이겠다"는 것이 이마크러시측의 포부다. 이곳을 찾는 네티즌들도 대부분 10~20대 신세대들인 것은 불문가지.

총선정보통신연대도 최근 웹사이트(www.netngo.or.kr)를 마련하고 정치 개혁에 나섰다.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개인의 사생활 보호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 등을 주창하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온 통신연대가 총선 대비 체제로 탈바꿈한 것. 역시 20대의 N세대가 연대의 중심이다. 총선시민연대와 '주체적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밝힌 총선정보통신연대는 웹사이트 개설과 함께 '네티즌 행동지침'을 공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공간을 통해 낙천·낙선 운동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고, 투표 참가 운동을 벌이며, 각 지역별 사이버 선거감시단을 만들어 불법 선거운동을 막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터넷에 대해 적극적인 것은 총선 출마(예상)자들이다. 이는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사전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운 데 견주어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심마니(www.simmani.com)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까지 심마니에 등록된 국회의원 홈페이지 수는 82개에 불과했으나 지난 1월말 110개로 증가, 한달 사이에 34.1%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심마니의 전문 서핑(Surfing) 팀이 심마니에 등록된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까지는 소속 정당별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 등록 수가 새천년 민주당(새정치 국민회의) 30개, 자민련 32개, 한나라당 19개, 무소속 1개였으나 올 1월 들어 새천년 민주당이 13개, 자민련이 3개, 한나라당이 11개, 무소속이 1개를 각각 신규 등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따라 1월 말까지 정당별 국회의원이 등록한 홈페이지 수는 새천년 민주당이 43개, 자민련 35개, 한나라당 30개, 무소속이 2개로 늘어났다. 또한 정당별 관련 홈페이지 수도 지난해 말에는 9개에 그쳤으나 1월 말에는 15개로 늘어났다.

이처럼 총선 출마(예상)자들이 인터넷에 관심을 갖는 것은 웹사이트를 통해 사전 선거운동을 벌일 수 있다는 이유말고도, 국내 인터넷 사용인구의 주류인 20~30대 젊은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그 형식과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총선 출마(예상)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수준 이하다. 물론 평균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뜻이다. 디자인은 더없이 조악하고 촌스럽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이미지 로딩(Loading)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린 것도 있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자기 홍보에 급급해 네티즌들의 참여 공간을 별로 배려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유게시판 정도다. 토론실, 온라인 여론조사, 사이버후원회, 이메일 클럽 등 인터넷의 장점과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웹사이트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과 시도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한 정치 혁명의 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그 가능성은 무엇보다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용인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인터넷 특유의 쌍방향성, 혹은 대화적 특성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홍의원측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네티즌들의 비난과 공격에 대해 해명이나 반박 등 적절한 대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즉자적이고 감정적으로,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마구잡이로 쏟아부은 네티즌들도 문제다. 인터넷이 아무리 즉자적이고 발빠른 매체라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견해로는 바른 대화나 토론을 할 수가 없다. 네티즌들에게 좀더 성숙한 의식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가진 잠재력, 따라서 시민의 요구와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현실 정치판을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치참모인 딕 모리스는 '보트닷컴(Vote.com): 어떻게 대자본의 로비스트와 미디어가 영향력을 잃고, 인터넷이 국민에게 권력을 주었는가'라는 책에서, 신문매체는 제4부로서의 권력을 잃을 것이며, 인터넷이 제5의 권부에 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급기야 국민들로 하여금 그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 그의 '급진적인' 주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터넷의 확산이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와 같은 형태의 전자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인터넷 덕택에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중간매개체인 국회와 언론의 역할은 약화되며, 심지어 정당정치의 일반적인 메커니즘과 공천 과정, 여론조사 등도 인터넷에 그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그의 견해대로라면, 지금 국내에서도 그와 같은 정치적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번 4·13 총선의 결과는, 따라서 '인터넷 선거혁명'의 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 운동이 상당 부분 인터넷으로부터 그 동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여론조사에서는 낙천·낙선 운동을 지지한다고 해놓고 실제 투표에서 마음을 바꾸거나, 아예 투표조차 하지 않을 경우 이는 실패한 혁명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김상현<동아닷컴 기자>dot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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