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핫라인]화제영화 '반칙왕'주연 송강호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스크린 속의 송강호(34)와 사람 속에 파묻힌 그.

연기자의 변신은 타고난 ‘천형(天荊)’이자 행운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분 바르고(분장) 옷 갈아 입고(의상) 스크린에 빠졌을 때(연기)’ 그처럼 달라보이는 연기자도 드물 것이다.

▼중고생 프로레슬링 붐 일으켜▼

4일 개봉한 뒤 불과 10여일만에 서울에서만 30만명의 관객(전국 75만명)을 불러모은 화제작 ‘반칙왕’. 경상도 억양에 더듬거나 빠른 말투에 넓적한 그의 얼굴이 섞이면 관객들은 웃음으로 뒤집어진다. 이 바람에 말을 더듬는 ‘송강호식’ 개그가 다시 유행하는가 하면 중고교에서는 헤드락 기술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때아닌 프로레슬링 붐이 일고 있다. 영화 제작사에는 그의 극중 캐릭터인 ‘반칙왕 아수라 X’를 사용하고 싶다는 프로레슬러의 제안이 들어올 정도.

11일 그는 매니저나 영화사직원 등 여러 명과 동행하는 여타 스타들의 모습과 달리 ‘혈혈단신’으로 신문사를 찾았다. 영화 촬영 때보다 약간 짧아진 헤어스타일에 검은 색 코트, 청바지. 수수한 차림에 평법한 얼굴.

▼평소엔 심심할 정도로 조용▼

그러나 담배를 입에 한 대씩 물고 본격적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자 그는 차르르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달라졌다. 세 번 쯤 놀랐을까. 너무 말을 잘해서, 그리고 진지함과 열기 때문에. ‘넘버 3’에서 “무…무…무대포 정신으로”라며 쉴 새없이 말을 더듬으면서 손찌검이 앞서던 불사파 두목은 온데간데 없다. ‘반칙왕’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울트라 타이거마스크로 레슬링 묘기와 웃음을 주던 그도 아니다.

“밖에서 만나면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평소에는 오히려 ‘심심’할 정도로 조용한 편입니다. 촬영을 앞두고 일부러 말을 줄 일 때도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에너지가 빠져나가 촬영 때 NG가 많아집니다.(웃음)”

어쩌면 ‘반칙왕’은 그의 ‘무대포 정신’이 빛을 발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는 헤드락은 물론 백드롭, 넉사자꺾기, 코브라 트위스트, 공중 날려차기 등 극중에서 등장하는 레슬링 기술을 대역없이 소화해냈다. 11월초 경기 성남시의 한 체육관에서 레슬링 경기 장면을 찍기 직전 만난 그의 코에는 이미 큼직한 밴드가 자리잡고 있었다.

“3개월간 매일 훈련했지만 상대방을 머리 뒤로 넘기는 백드롭이나 링 포스트 위에서 역회전하는 ‘뚜가리’ 장면을 찍을 때는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유명세와 달리 첫 주연을 맡게 된 심적 부담과 ‘쉬리’에서 “잘 안보였다”는 상대적 부진을 극복하느라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처럼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몸으로 때웠죠.”

그의 말에는 91년부터 6년간 연극무대에 서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생활의 고단함과 무명의 설움이 짙게 배어 있다. 경상대 재학 시절부터 연극무대까지 그의 단골 아르바이트가 막노동이었다. 돈 떨어지면 등짐을 졌고 특히 고향인 부산 김해 일대에는 자신이 ‘지은’ 아파트가 많단다.

▼"흥행은 순간이고 연기는 영원"▼

“사실 송강호만 잘한다고 손님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코미디는 억지로 웃기려고 하면 정말 웃기지 않게 됩니다. 시나리오의 ‘힘’에 바탕을 둔 섬세한 연출이 중요합니다. ‘반칙왕’은 그냥 웃기는 게 아니라 소시민의 인생과 슬픔이 배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흥행은 순간이고, 연기는 영원하다고 믿는다.

“연기의 폭과 깊이는 삶의 연륜이 좌우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건 기술이 아닌 게 분명해요. 배역이 바뀔 때마다 변신한다는 말도 우습지요. 지금 내가 잘하는 분야는 분명 코미디지만 송강호를 길게 봐주십시오. 연기는 늘지 않고 인기만 쫓는다면 반칙패가 마땅하죠.”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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