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쉽게 변하지 않는 日사회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31분


지난달 말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이후 가장 절감한 사실은 일본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쿄 거리는 3년반 전 연수를 마치고 돌아갈 때와 똑같다. 달라진 점을 일부러 찾아봤지만 번화가에 있는 라면가게 종업원까지 옛사람 그대로다.

신주쿠에 있는 동아일보 특파원 사택에는 10여년 전 전임 특파원 부인이 남긴 주변 지도와 메모가 있다. 어느 골목에 도시락집이 있고, 어떤 슈퍼의 물건값이 더 싸며,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어느 만물상 주인과 상의하면 된다는 등의 생활정보가 담겨 있다. 10여년 전 것인데 현재 상황과 비교해봐도 수정하거나 추가할 내용이 거의 없다.

일본의 신문과 TV를 봐도 일본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5년 전 발생한 옴진리교사건 관련 기사가 날마다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 심지어 16년 전의 모리나가 독극물사건의 추적기사까지 시리즈로 다뤄지고 있다. 끝까지 추적하는 일본인의 집요함은 쉽게 과거를 잊고 모든 것을 바꾸려는 한국인과는 분명히 다르다.

얼마전 한 일본 중소기업을 방문했다. 이 회사는 경영주가 개인파산을 신청하자 사원들이 3년째 회사를 운영하면서 도산 처리에 반대하는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보수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싸우는 사원들의 끈질김에 대해 존경심을 표했더니 여기저기서 반론이 터져나왔다.

“일본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다. 끈기는 있지만 사회를 바꾸는 힘이 없다. 한국인은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고 하지 않느냐. 그것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숨가쁘게 급변하는 한국이 부러운 모양이다. 회사 종업원들은 갑자기 한국의 운동권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한국말로 부르기 시작했다.

무섭게 빨리 변하는 한국, 고인 물처럼 변하지 않는 일본. 상대방을 교훈 삼아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영이<도쿄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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