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이래서 강하다]사회적 자본의 파워

  • 입력 2000년 1월 10일 19시 48분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묘사했다.

“네 옥수수는 오늘 익고 내 것은 내일 익는다. 오늘 내가 수확을 도와주고 내일 네가 도와주면 서로가 좋다. 하지만 네가 내일 안 도와주면 나만 손해이므로 오늘 도울 수가 없다. 내가 안 도와줬는데 네가 나를 도와줄 리가 없다. 겨울이 닥쳐 우리 모두 수확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두 농부가 협력할 수 있을까. 두 농부의 얇은 믿음을 탓하기보다는 두 농부가 안심하고 협력할 수 있는 체제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흄은 썼다. 1997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제인 파운틴 교수는 그 체제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했다.

사회적 자본은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을 포함해 연구소 대학 주(州) 및 연방정부 등이 생산적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을 가리킨다. 미국경제가 강한 이유는 바로 사회적 자본이 발달했기 때문. 파운틴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크게 늘고 있는 파트너십과 컨소시엄, 네트워크 등이 사회적 자본의 구체적 조직형태라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 이 분야의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 연구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1990년에 이미 74%였던 다른 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 비율이 1994년에는 86%로 올라갔다. 거의 모든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연구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되고 기술 주기가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생명공학이 한 회사만으로는 연구되기 어렵기 때문.

이런 사정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미국만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자본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파운틴 교수는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은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의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그 중 네트워크의 핵심은 미국의 대학들이다. 스탠퍼드대가 실리콘밸리, MIT대가 보스턴의 128번 도로 주변에 첨단산업기지의 형성을 촉발시킨 것이 실증적인 사례다.

이에 질세라 대학을 낀 연구공원(Research Park)들이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다. 미 대학 관련 연구공원협회(AURRP)에 따르면 전세계 연구공원 410개 중 142개가 미국에 있다.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 3개 대학을 끼고 설립된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는 불과 2, 3년 사이에 스탠퍼드대 연구공원을 제치고 최대 연구공원으로 떠올랐다. 그만큼 역동적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통계는 1998년 미 연방정부의 상위 200개 납품업체 명단. 록히드 마틴(1위) 같은 군수산업체와 대기업의 틈바구니에 캘리포니아대(UC)가 30억달러의 납품액으로 6위에 올랐다. 캘리포니아공대(17위) 존스홉킨스대(35위) 시카고대(38위) 스탠퍼드대(78위)도 100위 안에 들었다.

이들 대학은 아이디어를 납품한다. UC는 핵폭탄을 처음 개발한 로스 앨러모스연구소와 로렌스 리버모아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미국안보에 가장 민감한 비밀무기와 장비를 연구, 개발한다. 그 과정에서 대학과 사회에 유용한 부수적 연구결과도 얻어 미국 전체에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대학과 정부가 이처럼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 것도 미국의 남다른 사회적 자본의 힘이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하버드大 제인 파운틴교수 인터뷰▼

미국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케네스스쿨의 제인 파운틴 교수는 최근 각광받는 정보화시대의 조직행태에 관한 전문가. 그는 1997년 미국 경쟁력위원회(Council on Competitiveness)에 ‘사회적자본:기술혁신을 가능케하는 힘(Social Capital: A Key Enabler of Innovation)’ 이라는 논문을 제출했다. 이 논문은 미국경제의 힘을 경쟁의 관점에서만 보던 기존 시각에서 탈피한 것. 다음은 파운틴 교수와의 일문일답.

―그동안 인터넷이 훨씬 발전했다. 사회적 자본과 인터넷의 관계는….

“인터넷은 정보공유를 촉진하고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협력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자본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의 형성에서 정부의 역할은….

“미국의 민주주의는 경쟁의 기반 위에 있다. 정부의 많은 정책도 경쟁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경쟁이 해로울 때도 있다. 정부는 부지불식간에 기술혁신을 위한 동맹과 공동사업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한 경쟁은 물론 건강한 협력을 위해서도 ‘개입’할 수 있다. 정부가 재정지원이나 규범의 집행을 통해 네트워크의 중심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스스로 기술혁신을 위한 파트너를 찾아내는 것을 방해할 정도로 개입이 과도해서는 안된다.”

―동질적인 집단이며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은 어떤가.

“한국과 같은 국가는 기술혁신을 위해선 이질적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특허와 벤처 캐피털, 연구개발과 상품화에 따르는 금융기법도 필요하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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