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의 '벼랑끝 外交'

  • 입력 1999년 12월 22일 19시 59분


북한과 일본은 2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가진 적십자회담에서 일본의 대북 식량지원 조기재개 등 4개항에 합의했다. 합의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지만 일본측의 협상태도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북한측의 전매특허처럼 돼있던 ‘벼랑끝 외교’를 일본측이 구사하며 북한측을 역공(逆攻)한 것이다.

양측 적십자회담은 19, 20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북한측은 20일 회담에 응하지 않았다. 일본측이 ‘납치’라는 용어를 쓰는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20일로 예정됐던 국교정상화교섭 예비회담도 덩달아 무산(결국 하루 연기)됐다.

20일의 단계에서 일본측 대표단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밖에 없었다. 북한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든지, 회담결렬을 선언하는 것. 예전에는 북한측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본측은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했다.

일본측의 선택에는 명분도 있었다. 적십자회담은 19, 20일 열기로 돼있었으므로 협상시한이 지났다, 그러니까 돌아가겠다고 일본측은 말했다. 일본측 회담 대표 4명은 21일 오전 10시반(현지시간)에 출발하는 도쿄(東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떠났다.

이들이 공항 티케팅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 연락이 왔다. 북한측이 협상에 응한다고 하니 돌아오라는 연락이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일본 대표단은 급히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돌아가 회담을 열고 ‘공동발표’에 서명했다.

양측 대표단 중 어느 쪽이 가슴을 쓸어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현지에서 취재한 일본 기자는 “일본은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이려 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일본이 앞으로도 이런 협상태도를 견지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북한측에 상당한 충격을 준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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