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96)

  • 입력 1999년 12월 13일 19시 56분


그리고 그들은 양쪽에서 검표를 해오기 시작했어요.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백을 열고 패스를 찾았어요. 어머나, 그게 어디로 갔지? 전철 패스가 보이질 않았어요. 나는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며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죠. 유니폼은 부근에 오자 벌써 나의 태도를 알아차리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손만 내밀어 보였습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어요.

패스를…가지고 나오지…않았어요.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시오.

나 외에도 젊은 남자 두 사람과 노인 하나가 그 칸에서 적발 되었어요.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고 자꾸만 백을 뒤지고 또 뒤졌습니다. 잡동사니를 아무리 들추어도 보이질 않았지요. 이제는 벌금 걱정이 태산 같았어요. 지갑을 들추어 보았더니 이십 마르크와 동전 몇 개 뿐이어요. 전철이 귄¿ 스트라세의 폼으로 들어서자 역무원들은 적발된 사람들을 한 군데의 문 앞으로 모아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때에 그가 내 등 뒤에 다가섰어요.

별 일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나는 그를 한번 힐끔 돌아보았을뿐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살펴 볼 겨를도 없었지요. 신분증을 보이고 벌금을 내고 영수증을 받거나, 돈이 없으면 주소지를 확인하고 나중에 입금 시키는 조건으로 무임승차 확인서에 싸인을 하는 순서였습니다. 내 차례가 왔는데 물론 나는 돈이 모자랐죠. 내 등 뒤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벌금은 있는 겁니까?

나는 그제서야 고개만 돌리지 않고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건 분명히 두 번씩이나 우리말이었거든요. 나 보다는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남자였어요. 마흔 살은 넘었을 거예요. 긴 쥐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면도를 한지 며칠이 지났는지 턱 아래 듬성듬성 수염이 자라나 있었구요. 그런데 웃음을 지은 눈의 표정이 따뜻해 보였어요. 나는 지갑에서 십 마르크짜리 한 장과 오 마르크 두 장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나를 옆으로 젖히고는 역무원에게 얼마냐고 묻고 벌금을 지불하고 영수증에 싸인을 하고 얼른 내 등을 밀어냈어요.

어서 나갑시다. 저 사람들도 바쁠테니까.

우리는 바쁜 걸음으로 홈으로 나왔고 그가 앞장서서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걸어갔고 나도 얼결에 그의 뒤를 따라서 쫓아 올라 갔어요. 그는 키가 컸어요. 약간 굽은 어깨를 흔들면서 걷곤 해요. 계단을 올라오자 우리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분데스 알레의 대로에 서있게 되었죠.

저어 여보세요….

하니까 그가 돌아섰어요.

그래요, 나한테 빚졌죠?

미안합니다. 마침 패스를 두고 나왔어요.

나두 그런적이 있어서 잘 압니다. 운 나쁘면 한 달에 두 번씩 연달아 걸리기도 해요.

전화번호나 주소를 좀…나중에 돌려 드릴게요.

아, 영수증이 여기 있군요.

그가 코트 주머니에서 벌금 영수증을 꺼내어 내게 내밀었어요.

학생인가요, 뭐 공부해요?

예술대학인데요.

나는 영수증을 받아 넣고서도 헤어지지 않고 그와 나란히 걷게 되었습니다. 그가 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면서 내게 헤어질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가 또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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