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건…뭐죠?
나는 털뭉치 비슷한 물체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어요.
아, 그건 한스예요.
누구죠?
슈테판의 개요.
여기 무슨 얘기가 있군요.
마리가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짚더군요. 그건 물 나오는 무슨 샤워 꼭지처럼 보였는데 그네가 말해 주었습니다.
이건 방 치우는 걸레랍니다. 내가 한스를 걸레 막대기로 때렸어요.
당신 방에는 개가 없잖아요?
오래 전에 죽었어요.
아, 당신이 공원에 앉아서 그리는 건 요즈음의 일이 아니군요. 기억을 그리고 있군요.
마리는 중요한 비밀을 들킨 계집아이처럼 주름진 입술 사이로 빨간 혀를 내밀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한스를 때렸죠?
슈테판이 미워서. 그건 그의 개였거든요. 이건 아마 천 구백 칠십 년 겨울의 일이었을 거야. 그는 그 무렵부터 한 점의 그림도 그리지 못했어요. 나는 간병부 일을 나갔고. 새벽까지 일하고 돌아오면 그는 싸구려 시¿스를 병채로 마시고 늘 곯아 떨어져 있었거든. 물론 개 밥도 주지 못했지. 어찌나 극성스럽게 보채면서 달려들던지 녀석을 호되게 때려 주었어요. 그 뒤로 한스는 나를 따르지 않았어. 육십팔 년이 우리에게 어떤 해인지 유니는 잘 모를거야.
그네는 나를 유니라고 불렀습니다.
조금은 알아요.
파리보다 여기가 더했어요. 젊은이들은 모든 걸 파괴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 끝난 뒤에 두 가지 길이 남아 있었어요. 시골로 들어가 원시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과 아니면 테러리스트가 되는 길이요.
그건 무슨 뜻이죠?
별 차이는 없답니다. 시간을 길게 보는 쪽과 시간이 별로 없다고 보는 쪽의 갈림길이었지.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전쟁이 끝난 뒤의 일본이나 우리도 슈테판처럼 방황했어요. 어쩌면 그림까지 비슷해요. 용감무쌍한 아방가르드쟎아요. 지금 우리는 여기 보다는 훨씬 나아요.
마리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나는 요즈음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뭘까를 생각해요. 그저 사사로운 기억들을 떠올리고 살아요.
지난 십 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갔는지 나이 먹은 유학생들은 술자리에서 서로들 이야기했습니다. 똥 누러 뒷간에 갔다오니까 십 년 세월이 다 가버렸더라고. 나는 문득 마리에게서 나를 보고 사라진 그의 슈테판에게서 당신이며 송영태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경이를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글: 황석영>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