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 출생과 성장]아침식탁 단골 켈로그

  • 입력 1999년 10월 20일 04시 56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창고지기와 빗자루 판매원을 전전하며 방랑생활을 하던 동생 윌 켈로그(1860∼1951)와 요양원을 운영하던 형 존 켈로그 형제.

30대에 접어든 동생 윌이 형의 요양원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 부터 아침식사의 대명사격인 콘푸레이크의 역사가 싹트기 시작한다.

1894년 어느날. 켈로그 형제는 롤러에 밀을 넣어 음식을 만들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조리된 밀을 롤러에 밀어넣은 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가 이틀 뒤 평평하게 눌린 바싹 마른 밀 조각을 발견한 것.

이 밀 조각을 불에 구우면 훨씬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켈로그 형제는 요양원 아침식탁에서 폭발적인 상품화 가능성을 확인한다.

외부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요양원을 떠난 사람들에게 우편으로 이 ‘돌연변이 음식’을 배달하면서 밀푸레이크의 위력을 실감한 켈로그 형제는 동생 윌의 주도로 본격적인 포장식품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부터는 밀뿐만 아니라 옥수수도 재료로 이용되기 시작해 밀푸레이크의 동생격인 ‘콘푸레이크’도 탄생하게 된다.

푸레이크의 맛이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켈로그가 세계적 브랜드가 된 것은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현대적 마케팅 기법 때문.

켈로그는 사상 처음으로 디스플레이라는 개념을 마케팅에 도입했고 1907년에는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세번 윙크하면 신상품 샘플을 주는 이벤트로 주부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외광고물을 설치했는가 하면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광고와 최고의 아티스트가 만든 컬러 광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1929년 대공황 때도 광고 예산을 두배로 편성했을 정도로 켈로그의 콘푸레이크는 미국인의 식탁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다.

이후 호주와 영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켈로그는 본격적으로 세계무대로 시장을 넓혔고 지금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켈로그의 콘푸레이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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