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어떤 정경유착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뿌린 대로 거두는 세상사의 인과(因果)는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영국 속담에 ‘굽은 지팡이(crooked stick)에 굽은 그림자’라는 것이 있다. 중국에도 형왕영곡(形枉影曲)이라 해서 기막히게 똑같은 표현이 있다. 이 나라에 IMF비극을 불러온 정경유착의 단면이 한 ‘낯뜨겁고 서글픈’ 소송에서 드러나고 있다. 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영삼후보에게 35억원의 돈을 건넸다는 청우건설 조기현씨가 최근에 낸 김전대통령 상도동 집에 대한 가압류소송이 그것이다.

▽조씨는 민자당후보 YS에게 35억원을 ‘빌려’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 무렵 조씨는 민자당 중앙상무위원에다 중앙당 후원회 운영위원을 지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도 청와대에서 만나는 잘나가는 건설업자였다. 그래서 국방부 발주의 상무대 이전 공사 가운데 1600억원의 도로포장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그러다 공사 선급금 658억원 가운데 189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되어 형을 살았다.

▽YS측은 “정치헌금이야 받아 썼지만 누구로부터도 돈을 빌린 적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조씨 입장에선 뒷돈을 댔는데 본전은 커녕 YS 재임 중 박살나고 옥살이만 한 분노가 있을 것이다. 법원은 일단 “조씨가 ‘빌려’ 주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가압류소송을 뿌리쳤다. 조씨는 “여당 대통령후보한테 차용증이나 현금보관증을 받을 수 있었겠느냐”며 정식 소송을 내리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 보면 ‘빌려’ 주었느냐 아니냐는 사소한 법률시비거리일 수도 있다. 돈벌이 장사하는 사람이 정치인한테 ‘거저’ 35억원이라는 거금을 줄리 만무하다. 당장의 대가가 아니고, 구체적 조건이 없더라도 ‘투자’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빌려주었다”고 우기는 조씨의 ‘투자성’ 기억은 비난거리가 되어야만 할까. 참으로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할 소송만 같다.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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