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94)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10분


나두 가 봐야 하는데 추석 전에는 집안 일 때문에 통 틈을 낼 수가 없을 거예요. 어때요, 우리 다음에 서로 연락해서 같이 가보도록 해요. 잘하면 혹시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지두 몰라.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지르고나니 나는 꼼짝없이 당신에게 면회를 가게 되어 버렸어요. 갑자기 내 동작이 빨라졌지요. 먼저 근처의 백화점에 가서 긴 팔 티셔츠를 두어 장 사고 두툼한 겨울 세타와 조끼를 샀어요. 내복도 두어 벌 샀구요. 털 양말은 아직 없어서 나중에 당신 누님 편으로 보내리라 생각해 놓았어요.

고속버스를 타고 그 도시에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당신이 있다는 교도소까지 갔습니다. 교도소는 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있더군요. 논 밭 사이로 시멘트 도로가 곧장 뚫려 있고 미루나무 가로수가 서 있고 제일 먼저 희고 드높은 담장이 보였습니다. 담장 위에는 감시탑이 서있었어요. 감시탑 위에 총을 든 이가 서있었는데 커다란 등이 달려 있었고 확성기도 보였어요. 흰 담장 가운데 푸른 색의 커다란 철문이 보였습니다. 나는 군복 차림의 경교대라는 젊은이에게 면회실을 물어 보았어요. 주민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달고 외벽을 지나니까 안에 또 하나의 담이 보였고 한쪽에 면회실이라는 팻말이 보였죠. 면회실 구내로 들어가니까 병원 대합실처럼 넓은 공간에 접수처가 있고 대기하는 가족들이 의자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서로 바라보고 있었지요. 나는 접수하는 줄에 가서 섰어요.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교도관이 물었습니다.

신청서 주십시오.

아직 안썼는데요.

다시 옆으로 밀려나 신청서를 쓰고 ‘관계’라는 난이 있었지만 빈 칸으로 놓아둘까 하다가 그저 친지라고만 썼어요. 당신의 수번과 이름도 썼어요. 그러고는 다시 줄에 끼어들었는데 내 차례가 되니까 아까 그 교도관이 나를 말끔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요.

오현우씨와 어떤 관계입니까?

저 그냥…친구인데요.

그는 빙긋 웃었어요.

애인입니까?

저어…그, 그래요.

관청이라든가 군에서 여자 친구란 성립이 안되는 걸 잘 알아요. 그들에게는 아내면 아내, 애인이면 애인, 외에는 정답이 따로 없으니까요. 아무개 애인이 면회 왔다더라는 말은 웃음 섞여 말이 되어도 여자 친구? 라는 알쏭달쏭한 말은 없는 셈이지요. 교도관이 말했어요.

직계가족 외에 면회가 안된다는 건 잘 아시죠?

전 약혼…했어요. 그래두 안되나요?

글쎄요 이건 내 소관이 아니라서…저기 앉아서 잠깐 기다리세요. 곧 담당자가 나올 겁니다.

나는 다시 기다렸어요. 의자에 앉고나서야 나는 주위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어린 손주를 안고 앉아서 눈이 짓무르도록 운듯한 붉은 눈의 할머니며, 날렵하게 야한 바지와 울긋불긋한 티셔츠나 미니를 차려입은 젊고 쌩쌩한 여자들,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고 함께 잠든 얼굴이 검게 그을린 시골 아낙네며, 거의가 여자들이었어요. 면회실은 실내 오른쪽에 출구가 보였는데 그 안에 아마도 복도가 있는 모양이에요. 문 앞에는 교도관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어요. 호명이 된 사람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갔거든요.

<글 :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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