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중국 공산화]西安의 총성이 살려낸 오성홍기

입력 1999-07-25 20:02수정 2009-09-2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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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처럼 맑은 물에 온갖 수목이 드리운 화청지(華淸池)는 여느 날처럼 평화로웠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던 연못 위로는 간지러운 부슬비가 내려 앉았다. 이 한가로운 풍경 어디에서도 63년전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대사건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36년 12월12일.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는 여기에서 거세게 굽이쳤다. 이날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西安) 외곽에 자리잡은이곳화청지에는국민당 정부의 대원수장제스(蔣介石)가일주일째 묵고있었다.

인근 옌안(延安)에 근거를 둔 공산주의자들과 전투를 벌이던 동북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을 격려하기 위해 그는 경호원 20명만 데리고 시안에 왔다. 그리고는 장은 장성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의 소공(掃共·공산당 소탕)은 이제 최후 성공의 5분 전에 와 있다.”

그러나 장제스의 연설을 듣는 장쉐량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아버지 장쭤린(張作霖)이 28년 일본 관동군에 피살된 이래 뿌리깊은 반일감정을 갖고 있던 장쉐량으로서는 일본이 아닌 공산당을 주적으로 삼은 장제스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쉐량의 이같은 ‘불순한’ 태도는 사실전부터 국민당 정부에 감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참모들은 장제스의 시안행을 극구 말렸다. 그러나 장제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시안행을 강행했다.

그 고집이 결국 엄청난 결과를 부를 줄이야.

12일 오전5시반 침상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난 장제스가 막 옷을 갈아입으려고 할 때 밖에서 난데없이 총소리가 들렸다.

자신에 대한 암살 기도라는 판단과 동시에 그는 튕겨지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뒷산으로 통하는 담을 뛰어넘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오랜 군생활로 단련된 날렵한 동작이었지만 담에서 뛰어내리면서 한쪽 다리를 삐고 말았다.

200만 군대를 지휘하는 국민당군 총사령관은 다리를 절며 홀로 뒷산으로 도망가야 했다.

장은 처음에는 이 소란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알았다. 구덩이 속에 몸을 숨기고 날이 새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까지버티면나를구출하러 올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색작업을 하던 장쉐량군에 발견되고 만다. 병사 하나가 그가 숨은 구덩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안에 위원장이 있다.”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내전중지와 국공(國共)합작, 정치범의 석방 등 8개항을 요구했다.

장제스가이를거절하자장쉐량은 그를 연금했다.그의운명은이제 예측할 수가 없게 됐다.

시안에서 일어난 이 극적인 사건은 전세계에 타전됐다. 언론들은 국민당의 최고지도자가 부하들에 의해 감금된 이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보도했다. 장제스의 생사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이 쏟아졌다.

국민당과 공산당 내부에선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국민당내 강경파는 즉각 시안을 무력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온건파는 “대원수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며 평화적 협상을 통한 수습책을 내놓았다.

공산당내에서도 장의 처리는 난제였다. 죽일 것이냐, 살려둘 것이냐. 장을 죽이고 국민당에 대한 군사공격을 개시해야 한다는 측과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처음 공산당 지도부 내에서는 장의 처단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장을 없애면 내전에 휘말릴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갔다.

공산당은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시안에 파견했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장제스와 저우언라이는 담판을 벌였다. 두 사람은 황포군관학교 시절 동료 교관 사이.

다음날 장제스는 마침내 장쉐량의 요구사항을 수락했다. 장제스는 바로 풀려나 난징(南京)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2주일간의 ‘시안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 대목에서 가정한다.

“장제스가 만약 그때 시안에 가지만 않았더라면….”

만약 그랬으면 중국의 오늘날은 지금과 크게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공산당은 당시 대장정으로 기력을 소진하고 근근이 버티던 상황. 국민당의 파상공세가 계속됐다면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시안의 2주일’이 중국 현대사에서 수십년 이상의 무게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안〓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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