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세상]앞못보는 친구들에「책 읽어주는 남자」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05분


늦깎이 방송대학생 김영식씨(40)는 학교에서 ‘책읽어주는 남자’로 불린다.

97년 한국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이 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학우들에게 2년째 교재를 음성녹음한 테이프와 점자학습자료를 만들어 주고 있는 ‘눈’이다.

2년전 같은 과에 다니는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강의교재 녹음을 해주면서 시작한 일.

지난달에는 이들에 뜻을 같이하는 20여명의 회원이 ‘시각장애학우를 돕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씨가 시간을 내 방송대를 다니고 빠듯한 시간을 쪼개 장애학우를 돕는데는 남모르는 사연이 있다.

어머니가 20여년전부터 시각장애인이 돼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때문이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씨는 아버지가 친지의 빚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날리기 전까지 먹고사는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빚쟁이들에게 논밭을 빼앗기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고 어머니가 행상이라도 나서야 김씨와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이때의 정신적 충격때문으로 갑자기 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김씨는 속수무책으로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나중에 제가 커서 어머니 눈을 꼭 고쳐드릴게요’라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력은 회복되지 못한채 10여년전 완전 실명상태가 됐다.

이런 사연을 가슴에 담고 있는 그였기에 학교에서 수업 도중 만난 시각장애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입학 후 같은 학과의 수업을 듣던 한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학습자료집을 녹음해 주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도움을 요청해 오는 장애인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자원봉사를 원하는 이들도 생겨나 이제는 모두 40여명의 장애학우들을 돕게 됐다.

김씨는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장애학우들을 모두 눈 먼 우리 어머니처럼 생각하는지를 수시로 되뇌곤 한다”고 말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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