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세로 가는길]투명한 납세환경을 만들자

  • 입력 1999년 7월 11일 18시 27분


『자영자들의 탈세문제는 어떤 측면에서는 투명한 조세인프라 구축을 태만히 해온 정부의 책임이다.』

세무전문가들은 과거 정부가 눈앞의 세수확보에만 급급해 장기적 안목에서 건전하고 정직한 납세 환경을 만드는 것을 게을리해왔다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자영자들의 탈세는 주로 매출누락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매출누락을 포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세무조사라는 직접적인 방법과 상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탈세행위가 저절로 노출되도록 유도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있다.

세무조사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근거과세할 자료가 없다면 사실상 조사의 의미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은 과세근거가 투명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간이과세나 과세특례제도로 인해 개인사업자의 70% 가까이가 이런 과세 근거자료 제출을 합법적으로 면제받고 있다. 이들은 기장작성의 의무를 가지지 않으며 정식 세금계산서가 아닌 간이계산서나 금전등록기 영수증을 주로 발행한다. 하지만 세금계산서가 아닌 이런 영수증은 이미 과세자료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는 매출누락을 포착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방법이 모두 여의치 않음을 나타낸다. 탈세행위를 노출해줄 증빙자료가 없기 때문에 상거래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이를 추적할 세무조사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정신고율 이상만 신고하면 세무조사 등 세무간섭을 일절 받지 않도록 한 표준소득률 제도를 94년까지 유지한 것도 자영자들이 장부를 성실히 작성할 의욕을 꺾어놓은 정부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손꼽힌다. 정부가 제시하는 신고수준에만 맞추면 손쉽게 탈세를 할 수 있는데 성실하게 기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 때문에 소득신고제도가 정부부과제도에서 자진신고납부제로 전환된 95년 이후에도 자영자들은 동종업계의 암묵적 합의하에 국세청의 표준소득률을 기준으로 소득세를 신고하는 악습이 계속되고 있다.

97년 부산에서 주류업을 시작한 김모씨(48)의 경우가 그 예의 하나. 김씨는 영업 첫해 실제 소득의 60%만을 신고했는데도 동종업자들로부터 엄청난 항의전화를 받아야 했다. 상의없이 혼자 소득을 높게 신고하는 바람에 자신들이 세무당국으로부터 시달리게 됐다는 항의였다.

이처럼 영수증 주고받기와 기장작성이라는 조세인프라의 양대축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출누락을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신용카드 사용 확대가 적극 검토되고 있다.

음식업 숙박업 등과 같은 소규모 사업자로부터 교부받는 영수증 중에서 과세자료로서 거래당사자간 상호검증기능을 갖춘 것은 현재로서는 신용카드영수증뿐이라는 것. 이에 따라 최근에는 카드 사용자에 대해서도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기업접대비 중 신용카드 의무사용비율을 현재 서울 80%, 광역시 70%, 시지역 60%, 군지역 50%로 채정돼 있는 것을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고 기밀비는 2000년까지 폐지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신용카드가맹에 따른 사업자의 부담도 경감시켜줄 필요가 있다. 실례로 미국에서는 신용카드업체들의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가 거의 없는 반면 국내에서는 1.5∼5%의 수수료가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신용카드사용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조세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다. 신용카드사용을 아무리 확대한다고 해도 현금거래 자체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세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조세체제를 납세자가 성실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제삼자 정보보고 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삼자 정보보고제도란 근로 이자 배당 사업 부동산임대 소득 등 모든 형태의 소득을 지급하는 자는 반드시 국세청에 지급내용을 보고토록 의무화한 것. 미국은 이 제도를 통해 납세자가 국세청에 자신의 소득내용을 신고하기 이전에 이미 90%이상의 소득정보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탈세하고 싶어도 탈세가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특히 미국은 모든 종류의 소득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는 포괄주의를 택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세법상 지정된 소득만 보고하도록 하는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점도 국세청이 납세자들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 일본의 경우 수십년간 성실하게 기재한 기장을 가져오는 납세자에게 갖가지 세제혜택을 부여해 성실한 신고가 이득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주는 데 성공한 것도 참고할 만 하다.

최명근(崔明根)서울시립대교수는 “조세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조세개혁을 논할 수 없다”며 “정부도 세수확보에 급급하기보다는 조세인프라의 구축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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