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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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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닌 어떻게 할거야?
그러나 착한 아우는 어머니 걱정 하려면 데모니 야학이니 노동자니 쓸데없는 짓 하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지르던 학생 때의 말버릇을 내보이지 않았다.
이모가 같이 들어오셔서 살거래.
혼자 된 이모가 어머니와 합치기로 의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아우는 공대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중동에 기술자로 나가서 사막에서 몇 년 동안 고생하며 밑천을 약간 만들어 돌아왔다. 그는 이제 겨우 서른 살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학생 때부터 사귀어 오던 여자가 있더니 언제나 불안정하게 떠돌던 나 때문에 이제껏 약혼도 못하고 가족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지난 몇 년을 헤어져 있어야 했다.
가서 결혼식 할거냐?
천상 그래야겠지. 서류로는 다 끝냈지만요.
어머니께선 뭐라셔?
어머닌 그저 형 걱정뿐이야. 어머니두…형 신문에 난 거 보셨어. 형이 빨갱이라구 동네에서두 수군거린대.
너두 그렇게 생각하니?
동생은 갈등이 일어나는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방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형이나 형 친구들이나…저 사람들은 엄청나게 막강한데 대체 뭘 하자는 거야?
나 같은 사람들 많아.
모르죠. 몇 십년이 걸릴지.
이제부터 일자리가 지금보다 몇 십배로 늘어날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강변의 자갈처럼 많아질거야.
아우와 나는 말을 잃고 한참이나 침묵하고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난 이제 가봐야겠어. 어머니에게 가볼테니까 넌 모른척해라.
내가 마루를 건너 안방 문을 살그머니 열었더니 방 안에는 희미하게 붉은 등을 켜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작게 움츠린 몸의 윤곽이 이불 위에 드러나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머리맡에 앉으며 베개 옆에 빠져나온 손가락을 잡았다.
어머니, 어머니….
으응 누구냐.
어머니 저 현웁니다.
뭐라구?
어머니는 잠결에도 이불을 젖히며 일어나 앉았다. 그네는 머리맡을 더듬어 안경을 걸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불 좀 켜라.
내가 얼른 일어나 불을 켜자 어머니는 안경 너머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손짓을 했다.
이리 좀 가까이 앉아 봐.
나는 어머니의 무릎 옆에 가서 앉았다. 어머니는 내가 언젠가 번역 일로 받은 돈으로 사다드렸던 분홍색의 큼직한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너 어디 가 있었니?
시골 친구 집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밥은 제때 먹구 다니고 어디 아프지는 않니?
그럼요. 감기 한번 안들었어요.
나두 네가 무슨 일을 하구 다니는지 이젠 다 안다. 말릴 힘두 없구. 하지만 피해 많이 보지않구 끝났으면 하는 게 소원이다. 네 아우 좀 봐라. 미국으루 간대. 넌 우리 집안의 장남이야. 장가두 가서 손주두 보구 해야할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어머니.
또 나가야 하니?
네, 제게 시간을 좀 주셔요. 차차 정리하겠습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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