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장관부인 「옷 뇌물」 의혹

  • 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17분


“장관 도지사 국회의원은 집안에 돈을 쌓아두고, 그것도 모자라 권세와 명예를 누리며, 가족 사랑은 남달라서 부인은 과소비로 달래주고, 귀여운 자식은 군대 안 보내는데….”

얼마전 관가(官街)에 나돌았던 ‘괴문서’의 한 구절이다. 일선 공무원이 장관 등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원망과 비판, 냉소를 쏟아낸 것으로 보이는 이 ‘괴문서’에 대해 우리는 착잡함과 동시에 큰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일부 ‘힘 있는 자들’의 행태가 그렇게 비칠지언정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성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한목에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사회적 불신을 조장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터에 들려오는 재벌회장 부인과 장관 부인들의 ‘옷거래 의혹’은 우리를 실로 당혹스럽게 한다. 외화 해외도피 혐의로 구속될 처지의 한 재벌회장 부인이 현직 장관 부인들에게 한 벌에 수천만원씩 하는 고급 의상을 선물하며 남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는 것인데, 당사자인 장관 부인들은 물론 이미 조사를 했다는 청와대측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니 현재로서는 그 진상이 어떤지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번 ‘추악한 거래 소문’의 와중에서 여러 장관 부인들이 떼지어 강남의 고급 옷가게를 들락거린 것이 사실로 밝혀졌고, 심지어 한 장관급 인사의 부인은 “재벌총수 부인들이 장관급 이상 부인들에게 옷 등을 선물하는 것은 관례”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도덕불감증의 극치요, 지탄받아 마땅한 행태이다.

이제 ‘IMF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고 경제도 성장세로 돌아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1백50만명이 넘는 실업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실업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지만 서울 부산 등 대도시의 실업률은 여전히 전국 평균보다 높은 8.4%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국가경쟁력과 효율성을 앞세운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수용하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현직장관 부인들이 값비싼 의상실에나 몰려다닌다면 당연히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이고, 누구를 위한 ‘고통전담’이냐는 항변이 터져나올 것이다.

‘국민의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개혁도, 제2건국운동도, 정권재창출도 허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잖아도 국민은 지금 이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혁을 지속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정부는 이번 ‘장관부인 옷거래’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할 것이다. 어물어물 덮으려 한다면 민심이 등을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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