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小波와 시인

  • 입력 1999년 5월 4일 19시 33분


30년 가까이 교단에 서온 양정자(楊靜子) 시인은 자신의 생애에서 꼭 한 가지만을 다시 선택하라면 단연 시인보다는 교사를 택하겠다고 한다. 올해 쉰다섯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란 정말 얼마나 풍성하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눈부신 존재들인가! 아무리 못나고 지둔한 아이라 할지라도 정체되어 있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성장하는 존재들이다.”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선생은 아이들이 어른의 소유물 쯤으로 여겨지던 시절, 아이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대상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어린이라 불렀다. 늙은이 젊은이가 있으면 마땅히 어린이도 있다는 ‘선언’이었다. 선생은 1922년 어린이날 제정을 선창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의 물건같이 알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선생의 사위이기도 했던 소파는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정신에 따라 서른둘 짧디 짧은 생애를 오로지 어린이 사랑에 바쳤다. 그 사랑이 세월의 강을 건너 시인의 마음에 닿았으니 선생의 탄생 1백주년인 올해 어린이날 아침은 한결 푸르고 싱그럽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리면 아직도 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어둠속에 갇혀 있다. 특히 IMF가 터진 후 결식학생 수가 15만명을 넘어섰고, 학대 당하는 어린이도 96년 이래 해마다 배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마당에 연례적으로 어린이날 행사나 가진다면 참으로 어른들이 부끄러운 일이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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