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101)

  • 입력 1999년 4월 27일 19시 05분


여기 몇 사람이나 살아요?

내가 묻자 그는 턱짓을 하면서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가만 있자… 그러니까 방이 모두 십육 호인데, 한 방에 적어도 둘 또는 네다섯 식구가 사는 데두 있으니 아마 오십여 명 될거요.

모두 직장 나가요?

아마 그럴 걸. 공원들두 있구. 아까 씻구 있던 아저씨는 스페어 운전수고. 스페어 운전수가 셋이나 살아요. 공사판 나가는 이들두 있구 노점상두 있어요. 여기서 몇 년 버티다가 셋방 얻어서들 나가지. 집에 남은 아줌마들두 노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구슬 빽을 꿰거나 봉투도 붙이구.

그는 팬티 차림에 수건을 목에 두르고 칫솔을 입에 물고 복도로 나가면서 물었다.

좀 씻지 않을라우? 온 몸에 톱밥이 근질거려서….

나는 아까 목욕을 해서 괜찮은데.

박이 나간 뒤에 나는 일단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보고나서 담요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라디오에서는 블루스 풍의 흐느끼는 듯한 노랫소리가 이어졌다. 마른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지난 가을 날 돌아온단 그 사람은 소식 없어 허무한 마음 다시 또 쓸쓸히 낙엽은 지고 찬 서리 기러기 울며 나는데.

어수선하던 복도의 인기척도 이제는 끊기고 골목 밖에서 귀가하는 사내들이 질러대던 술주정의 고함 소리도 그쳐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는 코를 드높이 골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희부연 천창을 올려다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벌집의 삶은 달동네보다도 열악했다. 이 집에 사는 모든 이가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활동가랍시고 돌아다니면서 서울 변두리의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 있는 편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무력감이 나를 엄습했다. 동우는 자리를 잘 잡았는지. 도대체 한 줌도 안되는 젊은 것들인 우리는 이 아리따운 순정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이튿날 아침 일곱 시에 박은 정확하게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나를 깨웠다. 나는 그를 따라서 수도간에 나갔는데 이미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벌집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붐비고 있는 중이었다. 박은 플라스틱의 빨간 색 양동이와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대야를 양손에 들고 수도간으로 돌격했다.

어어 이거 다 바쁘다구. 순서를 지켜야지.

잠깐이면 되는데 뭘 그러슈.

에이 물 튀잖아!

거 요강은 좀 나가서 씻으면 안되나. 꼭 복잡한 때에 나와선.

자자 물 받았으면 좀 비킵시다.

이런 투덜거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집 밖에 나오니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속옷 바람으로 나와서 세수나 양치를 하느라고 또한 법석이었다. 땅은 오랫동안 물이 빠지지 못해서 아예 진창이나 다름없었다. 박이 하는대로 나도 칫솔질을 하고 양동이에서 물을 떠 대충 얼굴에 물을 바르는 것으로 끝낸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두 칸씩 지어 놓은 변소 앞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길게 서있었다. 거기서도 투덜거림과 불평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박이 그쪽을 힐끔 바라보면서 내게 말했다

여기 변소는 급하지 않으면 절대루 가지마슈. 공장에 가서 느긋하게 볼 일 보는 게 나으니까.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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