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임성규/책속에 미래가 있다

  • 입력 1999년 4월 9일 20시 20분


세기말의 한국에 갑자기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는 국민 모두에게 깊은 시름과 크나큰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경제 전반에 걸친 총체적 불황이 가뜩이나 어렵고 힘든 출판계를 강타했다.

수년 전부터 위기 상황에 몰려 있던 출판계는 지난해 대형 도매상의 연쇄도산으로 결정적 파국을 맞았다. 낙후된 출판유통 구조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영의 불투명성, 전문인력의 부족, 규모의 영세성, 잘못된 거래관행 등으로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돼 있었다.

영세한 출판업계로서는 자력으로 유통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정부의 재정적 뒷받침 없이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IMF 한파가 출판계를 대파국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해는 너무나 끔찍한 해였다. 대형 도매상의 연쇄부도로 출판산업의 동맥인 유통체계가 마비됐다. 전국 소매상에 신간 서적이 공급되지 않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출판인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서점의 판매 부진이 대형 도매상의 부도를 몰고 왔다. 도매상 매출의 25%를 차지하던 출판사의 신간 발행량이 급속도로 감소함으로써 도매상들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출판시장이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단행본 출판사들은 신간 출간을 미루었다.

출판업계의 불황은 독서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도 무관하지 않다. IMF 관리체제 이전부터 해마다 대형서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었다.

한계상황에 이른 몇몇 출판사가 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정신문화의 기반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 실로 걱정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사회윤리와 도덕과 규범을 일깨우는 것, 천박한 황금만능주의와 왜곡된 물질주의에 경계심을 갖도록 일깨우는 것은 독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책 읽는 사람이 사회를 이끌고 그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대들보가 돼야만 사회의 건강성이 유지된다.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인 독서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다. 국민 모두가 한 달에 한두 권씩 책을 읽어도 벼랑에 선 도서출판계를 살리고 나아가 국가의 역량을 길러주는 토양이 될 것이다.

IMF 경제위기가 날벼락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까.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국민 대다수가 고도성장이 주는 포만감에 젖어 너나 할 것 없이 말초적인 향락문화를 추구하면서 낭비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건전한 비판정신 즉 분별력 있는 국민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책읽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독서를 통한 지식의 함양은 개인과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는 양식이자 건전한 사회를 일구는 기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양식있는 사회, 사고할 줄 아는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새로운 천년의 문턱에 서 있다. 21세기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이자, 문화와 예술의 시대이며 경제와 과학의 시대라고 한다. 밀레니엄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서 갖가지 행사와 축제가 준비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어느 나라에 가든 지하철을 타보라. 단행본을 손에 든 승객이 많은 나라는 미래가 있다.

임성규(문이당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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