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성일/실효성 없는 실업대책

  • 입력 1999년 3월 23일 18시 55분


한국 대표팀의 축구경기를 관람하다 보면 선수 모두가 시종 열심히 뛰는 투지가 돋보이지만 섬세함이 부족하다. 가끔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 초반에 진을 다 뺀 나머지 후반에는 체력이 달려 고전하기도 한다. 정부가 발표한 실업대책이 한국 축구와 흡사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실업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 퇴직자이거나 임시직과 일용직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주택경기 활성화와 공공투자 확대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이번에 나온 실업대책은 실업자가 집중돼 있는 대도시에서 공공근로 사업을 확대해 실업을 한시적으로나마 흡수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장기실업자가 늘어나는 형편을 감안해 영세민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대책에서 실업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국민의 정부의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지만 동시에 기존의 물량공세 위주 정책의 비효율과 부작용이 염려되기도 한다.

고용창출을 위한 주택경기 활성화와 공공투자 확대는 자칫하면 불섶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침체된 건설경기의 자동 반등과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최근에 건설경기 및 관련 취업의 증가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이 통계로 감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나치게 욕심을 내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을 쓴다면 원자재난과 관련 가격 상승 및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90년대의 고임금과 인력난의 주범이 주택 2백만호 건설계획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금년도 주택건축을 계획보다 25% 이상 확대하겠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실업대책은 거시경제 정책의 큰 틀 안에서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근로사업 확대를 통한 단기 일자리 제공은 여러 차례 지적된 것처럼 낭비적 폐단이 염려되므로 보완책이 함께 강구돼야 한다. 그동안 공공근로사업은 가장 확실하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안으로 여겨져 애용돼왔으나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하루는 땅을 파고 다음날에는 다시 땅을 메우는 식의 낭비가 심했다. 생산성 있는 사업이 되기 위해서 3D 사업장의 공공근로 투입을 더욱 활성화하고 사업 발굴에 민간의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등 민간부문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이용을 억제해 내국인 고용으로 유도하려는 정책은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으므로 재고돼야 한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작업은 거의 대부분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이다. 외국인 연수생을 줄이면 내국인으로 대체되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인력난만 가중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중소기업을 육성해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실업대책을 비판하기는 쉽고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정부가 실업문제에 대응해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집행 과정의 실수를 신속히 바로잡는 점 등은 높이 사고 싶다. 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으로 급상승하지 않고 앞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믿는다.다만 단기적인 실업률 낮추기에 급급하지 않고 중장기 실업대책을 준비하는 차분한 자세로 임했으면 좋겠다. 예산확대보다는 확보된 실업예산을 적시에 적절하게 사용해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축구경기에서도 흐름에 따라 완급의 조절이 필요한 것처럼 실업대책을 수행하는데도 경제의 흐름에 맞추어 템포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성일(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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